[권상집의 인사이트] CJ, 영화산업 베테랑의 진면목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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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CJ, 영화산업 베테랑의 진면목 보여줄까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 승인 2024.09.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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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영화 <베테랑2>가 안정적인 흥행 속도에 접어들었다. 추석 연휴에만 400만 관객을 돌파,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베테랑2>는 영화 ‘베테랑’을 사랑하는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 이외 CJ가 영화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점이었다. 영화의 성공이 절실한 이유다.

브레이크 걸린 CJ의 영화사업 

지난 7월 CJ ENM이 공개한 이선균 배우의 유작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막대한 투자 손실을 남겼다. 올해 2분기에 <범죄도시4>가 1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영화 흥행의 가속도를 올렸지만 CJ ENM은 메인 투자한 영화를 단 한 편도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하지 않는다는 건 신중함도 있지만 흥행성이 부족하단 뜻이다. 

지난 3년간 CJ ENM이 배급한 영화 중 가장 높은 실적을 기록한 영화는 작년 9월에 개봉한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의 191만 관객 동원이다. 영화 제작비는 113억원.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240만명의 관객이 영화를 봐야 한다. 즉 해당 영화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영화산업의 위기는 결국 CJ ENM의 위기다. 

지난 2년은 CJ 입장에선 잔인한 한해였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유명한 김용화 감독이 야심차게 만든 SF 영화 <더문>은 286억원을 투자, 손익분기점으로 600만명이 예상되었지만 관객 동원은 51만명에 그쳤다. 제작비 370억원을 동원한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2부>는 손익분기점이 800만명이지만 관객은 143만명에 그쳤다. 

CJ가 배급한 모든 국내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자 지난해 10월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에서 CJ ENM의 구창근 대표는 CJ가 영화투자를 중단한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라며 영화투자 중단 루머를 잠재우는데 주력했다. 당시, CJ ENM스튜디오 콘텐츠 대표, 영화사업부장, TVING 대표가 모두 참석하며 루머를 잠재웠다. 

문제는 그 이후다. 지난해 10월 CJ의 영화투자 중단은 사실이 아니라며 거듭 부인했던 구창근 CJ ENM 대표는 자리를 맡은 지 1년 2개월도 안되어 사임했고 현재 CJ ENM 대표는 커머스(홈쇼핑)부문의 윤상현 대표가 맡고 있다. 올해 CJ ENM이 공식 투자하기로 선언한 작품 역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1편뿐이다. 

CJ의 위기, 영화산업 전반의 위기

영화업계에서는 CJ가 사실상 영화사업에서 손을 뗐다고 언급한다. 쇼박스, NEW, 플러스엠 등의 경쟁 배급사가 내년도 영화 라인업을 조금씩 준비하는데 비해 CJ는 올해 개봉한 <베테랑>, 12월 개봉 예정인 <하얼빈> 외에 내년 라인업이 전무한 상황이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신작 외에 CJ의 제작투자 영화는 제로 수준이다. 

영화사업은 기본적으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산업이다. CJ ENM이 30년 가까이 수많은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었던 건 기적에 가까운 영화가 매년 나왔기 때문이다. CJ는 지금까지 1000만 관객을 넘은 영화 9편, 500만 관객을 넘은 영화 31편을 제작투자, 배급했다. 역대흥행 1위 <명량>과 2위 <극한직업> 모두 CJ 배급작품이다.

문제는 하이 리턴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리스크가 최근 5년간 커졌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관객 수의 감소도 문제지만 시각 특수효과(VFX) 작업 확대, 스태프 처우 개선 및 배우 출연료 상승으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기준은 100억원대에서 200억원~300억원으로 뛰었다. 리스크의 극대화는 리턴이 어려워짐을 뜻한다.

영화사업은 다른 분야와 달리 정성을 기울인다고 성공하는 분야도 아니다. 기술력이 탁월하면 성과를 어느 정도 거둘 수 있는 하이테크, 제조업과 달리 영화는 대중의 복잡한 흥미와 입맛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사업하기가 가장 어려운 분야다. CJ가 영화사업을 중단할 경우 산업전반의 위기가 된다며 업계가 염려하는 이유다. 

영화 베테랑2. 사진=연합뉴스

CJ, 영화사업 초기의 기업가정신을 살려야 

CJ에게 영화사업은 특별하다. CJ ENM은 대중에게 종합 엔터테인먼트 콘텐츠·플랫폼 기업으로 알려졌지만 그 시작은 K-POP, 방송, 공연, 게임이 아닌 영화였다. 1995년 제일제당 내부에 신설된 ‘멀티미디어사업부’가 훗날 CJ의 영화사업을 책임진 CJ엔터테인먼트의 모태다. CJ ENM의 E(Entertainment)는 영화의 상징성이 담겨있다. 

CJ가 영화사업을 시작할 때는 지금보다 더 어려웠다. IMF로 인해 모든 기업이 지갑을 닫았고 영화 <쉬리>로 한국영화를 산업화한 삼성영상사업단마저 철수했다. 그 시기, CJ는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영화에 대한 제작투자를 멈추지 않았고 25년간 영화사업에 쏟아 부은 노력의 결실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이어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미경 CJ ENM 부회장은 영화의 수익성보다 늘 가치 창출에 방점을 둔다. 그 결과, 탐험적인 시도를 해왔기에 국내 영화산업 부동의 강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엔 넷플릭스 등 OTT 공세와 유튜브 등 플랫폼의 변화로 CJ의 영화사업은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흐름에 끌려가는 모양새다. 

TV가 나타났을 때도 영화는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영화산업은 스크린과 사운드 개발 등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CJ의 영화사업은 기업가정신이 돋보였지만 최근 10년은 수직계열화에 안주한 모습이다. 그 사이 참신성과 대중성을 갖춘 콘텐츠가 CJ보다 OTT에 먼저 손길을 내밀었다. 

CJ 초기의 역동성, 영화에 관한 선구안, 실험정신이 부활해야 한다. CJ는 영화사업의 베테랑이었다. 베테랑이 기업가정신이란 본질을 잃으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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