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지난주 한국에서는 세계지식포럼(World Knowledge Forum)이 열려 전 세계의 리더와 석학들이 모였고, 핵심 연사 중 한 명인 IE 비즈니스 스쿨의 부학장인 Lucia와 글로벌 여성 리더십을 주제로 대담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그녀의 인사이트 넘치는 강연과 대화도 흥미로웠으나 기억에 더 강하게 남아있는 것은 유럽의 친환경적 업무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 만나 명함을 주고 받는 대신 링크드인을 연결하며 유럽에서는 종이 명함을 사용하지 못할뿐 아니라 강의자료, 발표자료, 업무 전반의 과정에서 종이 인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추석 연휴 내내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기후 위기가 이제 다른 국가의 일이 아님을 피부로 체감한다.
한국 정부 역시 기후 위기 대응을 주요 정책 목표로 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종이 사용 측면에서 바라보면 현실은 여전히 낭비가 심각하다. 당장 각종 정부 보고서와 지자체 사업 보고서 등에는 수백,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종이 인쇄물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이런 서류는 보고 시점 이후 대부분 폐기된다.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이유로 제본을 위한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까지 생각하면 정부조직 내에서의 의식 변화부터 갈 길이 멀다. 정책을 입안하고 이에 대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정부조직부터 아직 이럴진대 민간에 어떤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요구할 수 있을까?
반면 유럽뿐만 아니라 인도나 중동 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종이 없는(paperless) 사회로의 전환이 전 세계적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인도 정부는 모디 총리가 2014년 취임한 이후 ‘디지털 인디아'라는 정부 주도의 범 국가적 차원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추진하며 종이문서 없는 행정처리를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현재 인도는 세계에서 데이터 비용이 가장 저렴한 국가임과 동시에 중국에 이어 ICT 분야의 성장이 가장 빠른 국가로 올라섰다.
2018년부터 ‘두바이 페이퍼리스 전략'을 추진해 온 두바이의 경우도 총 45개 정부 기관에서 3억 3600만장 이상의 종이를 절약하고 두바이 정부의 내부 및 외부 거래나 절차를 100% 디지털화 하여 포괄적인 디지털 정부 서비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정부 차원에서 종이 사용을 지양하고 시스템과 절차, 데이터를 모두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은 단순히 비용 절감이나 절차 간소화라는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데이터와 기록의 디지털 전환은 블록체인 기술이 행정 전반에 훨씬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보안을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거래 기록을 분산 저장해 투명성을 높이고, 서류 위조나 변조를 방지하는 데 탁월한 기술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두바이 정부의 paperless 환경 구축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핵심적으로 활용 및 연계되고 있다.
기술 진흥과 환경 보호를 모두 강조하는 한국 정부가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면, 종이 없는 행정 시스템 구축을 본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기후 위기 대응의 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효율성과 투명성을 증대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모든 행정 기록을 투명하게 저장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은, 부패를 방지하고 국민 신뢰를 높이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진정한 잠재력을 정부 부문부터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다. 공공기관과 행정 절차에 블록체인을 적용함으로써, 중앙 집중화된 데이터 관리 구조를 분산형 네트워크로 바꾸고, 서류나 데이터의 위조와 변조를 방지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전환과 블록체인 기술 도입은 궁극적으로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다.
한국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선다면, 디지털화를 통한 종이 없는 정부 시스템을 도입해 자원 절약과 효율성 향상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공공 부문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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