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슨·이재용 재판 영향 줄 듯
정부, ‘엘리엇 취소소송 각하’에 항소
李 불법승계 의혹 2심 재판 영향 '제한적' 전망도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한국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취소 소송을 영국 법원이 각하한 데 대해 항소를 제기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불공정 합병 논란 이후 한국 정부가 '투자자-국가 분쟁해결 절차'에서 연전연패하며 외국 투자자에게 물어야 할 배상액만 2100억원을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거듭해서 '한국 정부의 부당 개입'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이번 각하 결정이 '부당 합병'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2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韓 정부 항소 "한미 FTA 해석 오류"
법무부는 지난 12일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약 130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정 취소 신청을 각하한 영국 상사법원의 결정에 항소하기 위한 서류를 법원에 제출했다.
법무부는 정부가 관계부처, 정부대리로펌, 외부 전문가(교수, 국내외 로펌, 영국 법정변론변호사 등)과 영국 1심 법원의 각하 판결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히면서 "해당 판결에 한미 FTA 해석 등에 관한 중대한 오류가 있어 항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제11.1조에서 '당사국이 투자 또는 투자자와 관련해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에 적용된다고 규정한'다"며 "제11.1조가 관할 또는 관문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영국 1심 법원 각하 판결에 항소해 이를 바로 잡고 향후 동일하거나 유사한 문언을 가진 투자 협정의 해석 및 적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우려와 부당한 ISDS 제기가 늘어날 가능성도 항소 제기 결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문언을 가진 투자 협정'은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매니지먼트와 ISDS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메이슨 역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보고 ISDS를 제기했고, 우리 정부는 지난 7월 취소 소송을 냈다.
지난달 1일(현지시각) 영국 상사법원은 한국 정부가 지난해 7월 제기한 PCA 판정 취소소송을 각하하며 한국 정부는 엘리엇에 1억 달러(약 13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국제통상 전문가 송기호 변호사는 "우리 정부가 지난해 7월 엘리엇 사건의 국제중재판정부가 관할권이 없는 사건을 판정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영국 법원에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영국 법원은 18개 국제법 및 영국법 판례를 들어 한국 정부의 주장을 배척했다"며 "메이슨에 대한 취소소송 역시 각하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의 항소에 엘리엇은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엘리엇은 입장문에서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중재 판정에 불복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나 잘못된 행보이며 특히 대한민국이 이미 취소 소송에서 패소한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행보는 공정하고 투명하며 신뢰할 수 있는 자본 시장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욱 고착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우리 정부를 상대로 7억7000만 달러(약 1조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ISDS를 제기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승인 과정에서 정부가 의결권을 가진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게 이유다. 지난해 6월 PCA는 정부가 5358만6931달러(판정 당시 환율 1288원 기준 약 690억원)의 손해배상금과 지연이자, 법률비용 등을 포함해 모두 약 13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법무부는 중재지인 영국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영국 법원이 취소 소송을 각하하며 재차 엘리엇의 손을 들어줬다. 비슷한 이유로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케피탈과도 ISDS를 진행하고 있다. 엘리엇 및 메이슨과 이어진 송사에서 연이어 패하며 우리 정부가 받아든 총 배상 청구액은 2100억원에 이른다.
취소소송 각하, '불법승계 의혹' 이재용 2심 영향은
앞서 엘리엇의 손을 들어준 PCA는 판결 과정에서 한국 검찰의 수사 결과를 인용한 엘리엇 측 주장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재판 과정에서 엘리엇은 이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에 대한 국정농단 특검팀의 수사 결과를 인용하며 "한국은 자신의 형사사법제도를 통해 합병에 위법한 개입이 있었음을 스스로 주장했고, 판결로도 확인했다"고 했다. 합병 과정에 한국 정부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한국 검찰이 판단했기에 이를 부인하는 건 자기부정이라는 엘리엇 측의 주장을 수용했다.
하지만 우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1심 법원은 지난 2월 불법행위가 없다고 판단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위법은 없었으며 부당하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경영권 안정화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된 측면이 있다고 봤다. 특히 1심 재판부는 엘리엇과의 ISDS 사건에 제출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는 독립적으로 이뤄졌다'는 정부 진술을 무죄 근거로 인용했다.
1심 재판부가 PCA 판단과 달리 정부 측 주장을 인용한 가운데 ISDS 관련 국제 분쟁에서 PCA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여전히 '정부 차원의 불법 승계 지원'이라는 엘리엇 측 주장을 견지하며 취소 소송 각하 등 처분을 내리고 있어 이 회장의 불법승계 관련 의혹 2심에 영향을 줄지 귀추가 주목 된다.
이 회장의 불법승계 의혹 관련 2심 재판은 속도를 내고 있다. 2 재판부는 지난 5월과 7월 한 차례씩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검사와 변호인 사이의 쟁점과 증거를 정리했다. 그리고 첫 정식 공판은 오는 30일 개시한다. 이어 오는 11월25일까지 2주 간격으로 모두 다섯 차례 공판을 진행한다. 2심 판결은 이르면 내년 초 나올 것으로 예상되면 2심에서도 무죄가 나오면 검찰이, 1심이 뒤집히면 이 회장 측이 상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결론은 2025년 말이나 2026년은 돼야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PCA의 판단이 불법승계 의혹과 관련한 이 회장의 2심 재판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경영권 불법 승계 여부가 ISDS의 핵심 쟁점이 아닌데다 PCA가 한·미 FTA에 규정되지 않은 '사실상 국가기관'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비정부기관인 국민연금의 판단을 정부 책임으로 본 점은 오류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비록 1심이지만 우리 법원이 경영권 승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사실은 향후 ISDS 과정에서 유리한 입장으로 변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정부기관인 국민연금을 엘리엇이 정부 차원의 불법 승계 지원이라고 부풀려 주장한 측면을 파고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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