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감독 통일성 없어 사고 빈발
금융위로 단일화 목소리...실효성은 글쎄
금융당국 규제 안 먹혀...중앙회 상대 소송도
시중은행들이 굵직한 금융사고로 세간의 이목을 끄는 사이, 새마을금고·신협·수협 등 상호금융권이 자잘한 사고들을 꾸준히 터뜨리고 있다. 사고 규모나 사회적 파급력은 덜하지만 그 빈도는 은행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잦다. 조합원들의 쌈짓돈이 모여 설립된 조직이라는 본래 의미가 내부통제 부실로 무색해지는 시점이다.
금융당국마저 상호금융이 지역·서민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소홀하다며 건전성 회복과 리스크 관리 역량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지금 상호금융권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준호 기자] 상호금융권에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건사고의 주 원인으로 꼽히는 건 ‘제각각 감독기구’다. 상호금융이 사실상 금융회사 역할을 하지만 관리·감독하는 주무관청이 저마다 달라 건전성 등 리스크 관리에 통일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상호금융권은 지역중심조합(신협·새마을금고)이냐 직능중심조합(농협·수협·산림조합)이냐에 따라 주무부처, 감독기관이 갈린다. 게다가 그 하나의 금융기관 마저도 감독·설립·검사하는 곳이 다르다.
예컨대 수협의 공제사업과 경제사업 감독은 해양수산부가, 신용사업 감독은 금융위가 맡는다. 수협의 주무부처는 해수부로, 해수부는 수협 설립 인가를 담당한다.
새마을금고의 신용·공제사업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감독하고 경제사업은 행안부가 감독한다. 행안부 장관이 금융위와 협의로 감독을 결정하면 금융위 산하의 금융감독원이 나서는 형태다. 역시 주무부처는 행안부지만 설립인가는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이 한다.
신협은 감독과 설립 인가를 모두 금융위가 담당한다. 다만 여타 상호금융기관의 경영개선명령권이 주무부처의 장에게 부여돼 있는 것과 달리 금융위는 이 명령권이 부여돼 있지 않다.
그간 이 감독과 관리를 금융위로 일원화 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 왔다.
지난해 7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2명은 새마을금고의 신용·공제사업을 금융위가 직접 감독·명령하고 금감원의 검사를 받도록 하는 ‘새마을금고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올해 5월 29일 21대 국회의 임기가 만료되며 폐기됐다. 지난 2021년 1월 이형석 민주당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신용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같은 이유로 폐기됐다.
지난해 4월 더불어민주당은 홍성국 의원 주도 아래 아예 새마을금고·농협·수협·신협·산림조합 등 상호금융기관을 통합 관리·감독하는 별도의 정부 산하 기구를 두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홍성국 의원이 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면서 이 방안은 흐지부지 됐다.
부처간 이해관계도 쉽사리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행안부는 금융위에 감독권을 이관하면 ‘서민금융 지원’이라는 새마을금고의 설립 취지에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와의 긴밀한 협력만 강조하고 자체적인 규제 수준을 강화하면서 실권은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금융위 역시 사건사고 투성이인 상호금융을 선뜻 맡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전국적으로 1293개(2022년 기준)에 달하는 조합이 관리범위에 추가되면 300명이 채 안되는 금융위 입장으로서는 감당하기 벅차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양 기관은 별 수 없이 서로간의 협의만 강조하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9일 상호금융권과의 간담회에서 "지배구조, 영업행위, 부실 정리 등 분야별 규제 체계 개편 방향을 순차적으로 관계부처·유관기관과 협의해 나가겠다"며 "이런 노력으로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건전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지난 4월 신협·농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권을 관리하기 위한 '상호금융팀'을 설치·운영하기 시작했다. 금융위가 주관하고 행정안전부, 농림부가 협력하는 구조다.
지금으로서는 금융위가 상호금융에 강제성을 부여할 수도 없다보니 당국의 권고가 수년 째 무시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일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신협 866곳 중 515곳(59.4%)가 금감원 권고를 무시하고 과도한 명예퇴직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금감원의 개선 권고를 받은 신협중앙회는 이사회 결의로 한 조합의 직원이 같은 조합의 상임임원으로 가는 경우 명예퇴직금을 받을 수 없도록 직원 퇴직 급여 및 재해 보상 표준규정을 개정했다. 신협중앙회는 당국의 권고에 따라 해당 개정안을 각 지역 조합에 전달했다.
신협중앙회는 개정된 표준규정을 적용할 때 지역조합 이사회의 승인으로 적용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임의규정으로 분류했다. 임의규정은 각 조합이 자체 실정에 맞게 규정을 수정·채택할 수 있어 사실상 개선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금감원 역시 임의규정이다 보니 절반 이상 권고를 무시해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개별 조합의 이사장이 중앙회에 반기를 드는 일도 있었다. 지난 2021년 6월 A 새마을금고의 B 이사장은 새마을금고중앙회를 상대로 직무정지명령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지난 2019년 11월 새마을금고중앙회는 감정업무 부적정, 동일인 대출한도 초과 대출 등의으로 B 이사장에게 직무정지 3개월의 제재를 내렸다. 이에 B 이사장은 “중앙회가 직접 금고의 임원에 제재처분을 할 권한이 없다”면서 소를 제기했다. 그는 임직원의 제재 규정을 명시한 새마을금고법 조항이 중앙회가 제재처분을 ‘하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새마을금고법과 검사규정 시행세칙, 표준 정관 등은 금고 임원에 대해 직접 제재처분을 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직접 제재처분을 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법률 개정 과정상의 실수”라고 맞섰다.
법원은 “새마을금고법은 중앙회가 새마을금고 임직원을 제재조치를 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 문언상 명백하다”며 “금고 임원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처분 권한이 부여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해당 금고가 제재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금고의 설립인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간접적인 강제수단을 마련하고 있다”며 “금고 임직원을 직접 제재하지 못한다고 해서 새마을금고중앙회의 지도·감독권이 훼손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대안은 없나
전문가들은 상호금융 감독체계를 ▲동일기능-동일규제 원칙 적용 ▲주무부처 간 긴밀한 협력관계 및 중앙회 감독기능 강화 ▲상호금융기관 지배구조 및 내부통제 규율체계 마련을 제시한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일기능-동일규제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새로운 법을 제정하거나 신규로 전담 감독기구를 설립하는 방안들은 국회에서 법 제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며 "신협법과 새마을금고법을 개정해 신용사업에 대한 건전성 감독을 일원화하는 방안이 가장 수월하고 현실적인 방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법 개정에는 일정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동일기능-동일규제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무부처간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더불어 인력을 대폭 확충해 중앙회의 감독 및 검사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조합(금고)의 건전성과 내부통제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앙회와 마찬가지로 조합 내부통제기준 마련 및 준법감시인 선임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와 더불어 임원 선출, 임원의 자격요건, 이사회 및 총회 운영방식, 리스크 관리 등을 포괄하는 상호금융기관의 지배구조에 관한 규율체계 마련도 필요해보인다"고 제언했다.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