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정 칼럼니스트] "그거 알아? 앞집 할머니 현대무용 (공연)한대"...
진짜 할머니들의 춤. 안은미댄스컴퍼니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Dancing Grandmothers)>
할머니 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무대를 누빈다. 어! 뭔가 동작이 둔하고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은 무용수들이 있다. 깊게 새겨진 주름진 얼굴에 휜 다리, 구부정한 모습. 진짜 할머니다! 일률적이지 않고 대형도, 동작도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 리얼 할머니들이 무대에서 춤을 춘다.
이 작품은 '파격과 독특함'의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 안은미(61)의 안무작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이다. 20세기 격동의 한국사를 고스란히 겪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담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안은미의 파격과 재치, 그 속에 숨겨진 진한 내공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직접 찍은 시골 영상을 배경으로 색동저고리와 붉은색 치마를 입은 안은미의 독무로 이 작품은 시작한다. 느리지만 세밀하면서도 강약을 주는 움직임, 쿵쾅대는 강렬한 비트에 몽환적 표정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이후 '할머니'의 시그니처인 몸빼바지와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전문 무용수들이 무대에 오른다. 뒷짐을 지며 걷기도 하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어깨를 들썩이기도 한다. 음악과 비트가 빨라지면서 젊음이 연상되는 격렬한 춤을 보여준다.
잠시 후 안은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났던 할머니들 모습이 담긴 영상이 나온다. 영상 속 할머니들은 부끄러우면서도 꾸미지 않고 진심으로 춤을 즐기는 모습이다. 영상이 멈춘 후, 작품의 주인공 진짜 할머니들이 무대 위에 오른다.
'백만 송이 장미', '단발머리', '낭만에 대하여' 가요에 무용수들과 할머니들이 함께 춤을 춘다. 무용수들은 할머니들을 둘러싼 채로, 그들에게 절을 한다. 할머니들이 '우리의 조상'임을 의미한다. 이어 할머니와 무용수들은 한데 어우러져 신명나는 춤판을 벌리고 작품은 끝이 난다.
2010년 가을부터 안은미는 4명의 무용수와 카메라 석 대로 전국 일주를 했다. 춤을 배워본 적 없는 평범한 시골 할머니의 춤을 영상에 담기 시작한 것이 이 작품의 발단이 됐다. 할머니들의 몸 하나하나가 곧, '살아있는 박물관'이란 생각으로 시작했다.
"막춤의 '막'은 자유 곧, 프리덤. 자유로운 춤을 의미합니다"
어르신들의 '삶의 여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해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동안 생명을 유지해 온 그 근원의 힘이 어디서부터 있는가 관찰하고 만나 보고 싶었다.
공연은 실제로 그 지역 할머니들을 섭외한다. 밀양 공연에선 밀양 할머니, 여수에서는 여수 할머니들 등. '현지인'을 섭외해 같은 작품이라도 지역색이 묻어나 또 다른 분위기와 독특함이 연출된다. 평생 춤을 배워본 적 없는 할머니들은 사전 연습도 없이 무대에 오른다.
안은미 안무가는 "이미 어르신들은 완성도 있고 아름답다. 있는 그대로의 그 세월을 모시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만든 그들의 능력에 대해 박수받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아름다운 생명의 리듬이라 여겨 격식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생명의 춤'을 마음껏 선보이는 자리"라고 한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옷과 화려한 액세서리 그리고 빡빡머리를 한 안은미는 외모만큼 작품성에도 강렬함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시작해 이화여자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이후 뉴욕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고정관념을 비틀어 보는 안목으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독특함과 위트로 매 작품마다 '히트'를 치고 있다.
'춤은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그의 말처럼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파격적적이고 해학적 퍼포먼스가 있지만, 유머 속에 한국의 미와 감성이 녹아 들어있다. 콧대 높은 유럽 무대에서 오히려 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4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공연한 뒤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 성공리에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는 '커튼콜'이다. 정말 무아지경 춤판이 열리는 시간이다. 이제는 무대 안팎에 어르신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무대에 올라와 흥겨운 춤 판을 크게 벌린다. 이 때 세계적인 안무가인 안은미도 흥에 즐기는 '진짜 춤'을 춘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에 참여한 할머니들 중에는 90세가 넘으신 어르신도 있었다. 100년 조금 못 되는 삶이 할머니들의 (춤) 역사다. 안은미는 "전통을 넘어 움직임을 통한 인류학적 기록으로 '경험에서 나오는 움직임'이 유의미한 역사다"고 한다.
점점 세대 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어르신들에 대한 곤경보다는 무시와 외면이 더 많아지고 있는 시대다. 격동의 시대를 겪으신 어르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이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통해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번 명절은 우리 곁에 살아있는 조상님들과 함께 신명나는 한가위를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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