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전기차 등 주요 산업 수급 전망 '암울'
韓 제조기업 "국내 산업 보호 조치 강구해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중국발(發) 중·저가 공세에 국내 제조업이 휘청이고 있다. 국내 기업 10곳 중 7곳이 매출이나 수주에 영향을 받았거나 향후 피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삼성SDI는 지난 10일 편광필름 사업을 중국 업체에 1조121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이 악화하자 사업 매각을 결정했다. 포스코의 자회사 포스코퓨처엠도 최근 OCI와 합작으로 세운 이차전지 소재 기업 피앤오케미칼 지분 전량을 OCI에 팔기로 했다. 중국발 공급 과잉 등으로 본업인 철강과 이차전지 업황이 어두워지자 군살빼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제조업 70% "中 저가 공세 피해 영향권"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전국 제조기업 222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27.6%가 중국 제품의 저가 수출로 실제 매출과 수주 등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현재까지 영향은 없으나 앞으로 피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 기업도 42.1%에 달했다.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에 따른 피해는 내수시장보다 해외 수출시장에서 더 심각했다. 수출기업의 37.6%가 '실적에 영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같은 응답을 한 내수기업은 24.7%였다. 향후 피해 영향이 적거나 없을 것이라고 답한 기업도 내수기업이 32.5%로 수출기업(22.6%)보다 높게 집계됐다.
중국 기업이 저가·물량 공세에 나선 배경으로 재고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완제품 재고율은 코로나 기간 소비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2020년 10월 6.94%에서 2022년 4월 20.11%로 크게 뛰었다. 이후 중국 기업이 과잉 생산된 재고를 해외에 저가로 수출하면서 재고율은 2023년 11월 1.68%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중국이 좀처럼 경기 둔화세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지난 6월 기준 4.67%로 다시 높아졌다.
업종별로도 희비가 갈렸다. '이미 경영 실적에 영향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의 업종군을 살펴보면 이차전지(61.5%)가 가장 높았고, 섬유·의류(46.4%), 화장품(40.6%), 철강금속(35.2%), 전기장비(32.3%)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전 업종 평균 27.6%보다 높은 비중을 보였다. 반대로 자동차(22.3%), 의료정밀(21.4%), 제약·바이오(18.2%), 비금속광물(16.5%), 식음료(10.7%) 등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따른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국내 기업이 겪는 피해(복수응답)는 판매단가 하락(52.4%),과 내수시장 거래 감소(46.2%)가 가장 많았다. 해외 수출시장 판매 감소(23.2%), 중국향(向) 수출 감소(13.7%), 실적 부진으로 인한 사업 축소 및 중단(10.1%) 등의 피해도 나타났다. 국내 기업은 중국의 저가 및 물량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복수응답)으로 고부가 제품 개발 등 품질 향상(46.9%), 제품 다변화 등 시장 저변 확대(32.4%), 신규 수출시장 개척 및 공략(25.1%), 인건비 등 비용 절감(21.0%) 등을 꼽았다.
하지만 중국 기업과 비교해 국내 기업이 앞으로도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 중국 기업보다 기술력이 우위에 있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응답한 기업 중 향후 중국 기업의 추월 시점을 전망하는 물음에 응답 기업의 73.3%(4~5년 이내 39.5%, 2~3년 이내 28.7%, 1년 이내 5.1%)가 5년 이내 중국 기업이 기술력에서도 앞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기업들은 중국의 저가 공세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한 지원 정책으로 국내 산업 보호 조치(37.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연구개발(R&D) 지원 확대(25.1%), 신규시장 개척 지원(15.9%), 무역금융 지원 확대(12.5%), 자유무역협정(FTA) 활용 지원(6.3%)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우리 기업이 해외 수입품에 대해 신청한 반덤핑 제소 건수가 통산 연간 5~8건인데 비해 올해 상반기에만 6건이 신청됐다"며 "글로벌 통상 분쟁이 갈수록 확대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 기조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발 공급과잉 충격 장기화 우려 커져
더 큰 문제는 중국발 공급과잉 충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11일 '중국 공급 과잉 심화와 신용 위험' 세미나에서 "중국의 공급 과잉이 지속되며 국내 주요 사업 환경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짚었다. 구체적으로 철강과 석유화학, 태양광, 디스플레이, 전기차, 이차전지 등 6개 주요 업종의 수요와 공급 여건이 모두 국내 기업에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산을 포함한 제품 과잉 공급이 수요를 큰 폭으로 넘어서면서 가격 하락 등 기업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발 공급과잉이 국내 산업 전반에 충격을 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수민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3실장은 "중국 제품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산업은 가격 경쟁 심화로 실적 저하 위험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당분간 중국의 공급과잉 이슈가 신용도 주요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그 영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도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지난 6월 펴낸 보고서를 보면 "중국이 2024년 들어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태양광 등 주요 품목의 가격을 추가 인하하면서 해당 품목의 수출량이 전년 동기 대비 40~60% 급감했다"며 "다수가 국내 수출 품목과 중복돼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석유화학 부문은 이미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보다 사업경쟁력 측면에서 우위에 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격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범용 제품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서연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올레핀 기초유분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나프타분해시설(NCC) 업체를 중심으로 신용위험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적으로 자산 80조원 규모의 LG화학은 올해 상반기 석유화학 사업에서 올린 영업이익은 단 12억원에 불과하다. 상반기 회사 전체 이익의 0.2% 규모다. 앞서 2022년 석유화학 사업의 영업이익 1조원에 육박했던 것과 사뭇 비교된다.
태양광 역시 공급과잉이 심각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중국의 모듈 생산능력이 850GW(기가와트)로 올해 글로벌 태양광 설치용량 추정치 600GW를 훌쩍 넘어서며 공급과잉 상태라고 설명했다.
전기차와 이차전지도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 패권 장악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풀며 관련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 여파로 생산량이 늘면서 수출도 급증했다.
홍세진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북미와 한국 시장에서 중국 전기차의 경쟁력이 비교적 낮다고 평가하면서도 향후 전기차 전환이 빨라질 경우 신흥국 중심으로 경쟁 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장기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확대할 경우 원가경쟁력을 갖춘 중국 전기차는 글로벌 시장 경쟁을 심화시키는 위험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차전지도 중국 업체의 해외 진출 확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종일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최근 주요국이 역내 제품 생산과 사용을 강제하고 있는 점은 국내 업체에 긍정적이지만 국내 기업이 느끼는 수익성 압박과 재무부담은 높은 수준"이라고 짚었다.
2018년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능력에서 중국에 추월당한 한국의 디스플레이 부문도 위기다. 최근 중국 업체들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영역에서도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안수진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국내 패널 기업이 LCD 사업을 축소하고 수익성이 좋은 중소형 OLED 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있어 실적이 점차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부진한 LCD 업황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향후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서 중국의 OLED 비중 확대는 우려 요인"이라고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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