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울 14배 크기 우한서 '자율주행 실험'
韓 사고 시 책임 소재 불분명…도심 주행 지원 안 해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세계 2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이르면 내년 1분기 자사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완전자율주행(FSD)'을 중국과 유럽에서 서비스한다고 밝혔다. 중국 진출이 현실화한다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을 두고 그동안 자율주행 상용화를 주도해 온 테슬라와 빠르게 기술 격차를 좁혀오고 있는 중국 업체 간 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은 테슬라와 같은 레벨2 단계를 운용 중이지만 도심 환경에서 지원하지 않는 등 한계가 뚜렷하다.
FSD 중국·유럽 서비스 출시 알린 테슬라
테슬라는 지난 5일(현지시각) 엑스(옛 트위터) 공식 계정을 통해 "중국과 유럽에서 내년 1분기 중 FSD를 출시하기 위해 규제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2분기 실적설명회에서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말쯤 중국과 유럽 등에서 운행 허가를 받을 거로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머스크 CEO의 발언을 테슬라가 명확한 시기를 못박으며 구체화했다.
FSD는 자율주행(레벨2)을 가능하게 하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이다. FSD는 '오토파일럿'이나 앞차와 간격 및 속도(어댑티브 크루즈) 제어, 차로 중앙 유지, 차선 자동 변경 등 주행을 보조하는 운전자 보조시스템보다 한층 더 복잡한 상황에서 자율주행을 구현한다. 차선이 명확하지 않은 도심에서도 신호등이나 표지판, 도로 주변 사물이나 사람을 인식해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회전교차로나 고속도로 진출입, 비보호 좌회전이나 우회전도 가능하다. 테슬라는 17억 마일(2억7370만 km)을 주행하며 쌓은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업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레벨2' 기능을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동안 테슬라의 자율주행 서비스가 미국 외 지역에서 상용화되지 못한 건 자율주행 관련 각국의 규제와 나라별 법규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 당국은 중국 내에서 테슬라가 수집한 영상 데이터를 중국 밖으로 전송하지 못하게 막아왔다. 중국 도심에서 자율주행을 구현하려면 중국에서 수집한 영상 데이터를 미국 텍사스에 있는 테슬라 기가팩토리 내 데이터센터로 전송해 중국 내 도로상황과 법규, 신호 체계 등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켜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관련 규제와 법규 등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다 지난 4월 머스크 CEO가 중국을 방문해 리창 총리와 회동하면서 분위기가 반전했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된 테슬라 모델3와 모델Y에 대해 상하이에서 FSD 시험 주행을 승인했다. 바이두와 자율주행지도를 공동개발하기로 하며 자율주행에 필수적인 공공 도로 데이터 수집 허가도 획득했다. 이런 장벽을 넘어서면서 테슬라는 내년 1분기 중국 서비스를 자신하고 있다.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 산하 자율주행차규제분과(GRVA)는 오는 23~27일 열리는 회의에서 레벨2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핵심은 운전자가 운전대에 손을 긴 시간 뗄 수 있도록 하고, 시스템이 알아서 주행 관련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업계에선 자율주행 개정안 통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 규제가 통과되면 유럽과 중국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FSD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미래 모빌리티 굴기' 외치는 중국
중국이 자율주행 관련 규제 허들을 낮춘 건 나름의 자신감이 방영된 처사로 풀이된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소비시장이 된 중국은 새로운 모빌리티 산업 혁명을 외치며 '모빌리티 굴기'를 천명하고 있다. 베이징과 광둥성 선전, 후베이성 우한 등에서 자율주행 차량이 거리를 누비고 있고, 지리자동차, 둥펑 자동차 등 완성차 제조사 뿐 아니라 화웨이와 샤오미, 바이두 등 테크 기업들도 '모빌리티'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자율주행 기술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이미 우한 자율주행 시범지역에는 운전사 없는 '완전 무인택시'(로보택시)가 주행 중이며 바이두는 '뤄보콰이파오'를, 둥펑자동차는 '무인 버스'를 운행 중이다. 비록 미국보다 시작은 늦었지만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국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글의 무인 자동차 계열사인 웨이모보다 5년 늦은 2013년 자율주행 사업에 뛰어든 바이두는 지난해 우한에서 로보택시 탑승 건수 73만2000건을 달성했다. 반면 웨이모의 지난해 상업용 운행 기록은 약 70만 건이다.
리옌훙 바이두 창업자 겸 회장은 올해 4월 선전에서 열린 바이두 인공지능(AI)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바이두 지도 앱은 중국 내 360개 도시에서 활용되며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를 자랑한다"며 "우한에 연내 1000대의 로보택시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한이라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자율주행 실험실'이된 셈이다. 우한시는 서울의 14배 규모의 면적을 자랑하며 로보택시 등 자율주행 차량이 주행할 수 있는 도로 길이만 3378km에 달한다. 서울~부산을 여덟 차례 운행할 수 있는 거리다. 바이두가 단시간 내 1억km가 넘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중국 정부의 지원도 한 몫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2015년 자율주행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다.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의 기술력을 뛰어 넘겠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한은 2019년 자율주행 시범단지로 지정됐고, 5년 만에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율주행 도시라는 영예를 얻었다. 우한시가 바이두, 샤오미 등에 발급한 자율주행 테스트 차량 번호판만 2000개가 넘으며 로보택시, 무인버스 등의 연간 이용객이 근 90만 명에 육박한다.
중국 당국과 테크 기업에 이어 완성차 업체도 중국의 자율주행 기술에 날개를 달게한 주역이다. 우한에는 둥펑자동차를 포함해 13개 자동차 공장이 있으며 둥펑의 자회사인 둥펑웨샹은 2013년 설립 후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 서비스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등 기술 표준을 구축하는 데 앞장섰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2030년까지 미국과 중국의 자율주행 시장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도심 주행 지원 안하는 한국
한국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주도하는 건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도 테슬라와 마찬가지로 레벨2 자율주행 단계다. 레벨2 단계는 자율주행 시스템 이용 중 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모든 책임을 진다. 현재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레벨2 자율주행 시스템 이용 때 운전자가 운전대에 손을 올려두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같은 레벨2이지만 현대차·기아와 테슬라의 결정적 차이는 도심 자율주행 지원 여부다. 테슬라의 FSD는 도심 자율주행을 지원하는 반면 현대차와 기아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은 도심 자율주행을 지원하지 않는다. 고속도로 진출입로에 들어서거나, 회전교차로 진입, 비보호 좌회전이나 우회전은 아직 국내에서 상용화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망 사고 발생 때 브랜드 신뢰도에 타격을 줄 수 있어 자율주행 가능 범위를 확대하거나 레벨3를 상용화하는 것에 국내 제조사들은 조심스럽다. 레벨3는 운전자가 대부분의 상황에서 운전대에 손을 떼고 도로 상황을 주시하지 않는 단계를 말하며 레벨3부터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운전자가 필요 없는 레벨4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된 '무인 자율주행차'를 지난 6월부터 서울 마포구 상암 등 제한된 지역에서 시속 50km로 시범 운행하고 있다. 아직까지 레벨3 상용화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력보다는 사고 발생 때 따르는 법적 책임을 지는 부담감에 레벨3를 상용화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기술 확보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기업 '모셔널'에 1조3000억원의 자금을 투자해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모셔널의 증자와 앱티브의 추가 지분 매입이 마무리되면 현대차그룹의 모셔널 지분율은 85%까지 늘어난다. 모셔널은 2020년 현대차그룹과 미국의 자동차 기술 공급 업체 앱티브가 50대 50 지분율로 설립한 합작법인으로 자율주행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은 중국에서도 자율주행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바이두와 업무협약을 맺고 중국에서 커넥티비티와 자율주행 등 협력 영역을 넓히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2026년 미국에서 로보택시 상용화에 나선 뒤 국내에도 순차적으로 도입하다는 방침이다.
정부도 국내 자율주행 관련 제도 정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도로교통공사는 최근 원격 운전을 포함한 자율주행 법제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으며 자율주행 운행과 관리 책임을 명시하는 등 필요한 제도 개선 방향을 확인하고 도로교통법을 손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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