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직원 줄어 금융사고 늘었다는 금융당국에...은행들 "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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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직원 줄어 금융사고 늘었다는 금융당국에...은행들 "황당하다"
  • 박준호 기자
  • 승인 2024.09.05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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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직원 업무 과중돼 내부통제 취약"
5대 銀, 영업점·직원 수 4년 3개월 간 6.5%·5.3% ↓
은행권 "왜 뜬금 없이 금융사고와 엮나"
비대면 대출 활성화로 오히려 리스크 줄어
(왼쪽부터)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본점. 사진 제공=각사

[오피니언뉴스=박준호 기자] 금융당국이 최근 은행권에서 빈발하는 부당대출‧횡령 등 금융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영업점과 인원 감축을 꼽았다. 금융수요는 그대로인데 이를 담당하는 은행원 수는 줄면서 업무가 과중해졌고, 이에 따라 자체 내부통제 체계가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영업점을 찾는 고객이 줄어 감축했을 뿐인데 뜬금 없이 업무 과중과 내부통제 약화, 나아가 금융사고와 엮었다면서 황당해 하고 있다. 오히려 점포를 없앤 후 대출 업무가 대부분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직원 손을 타는 일’이 적어졌고 실제 건수로는 금융사고가 줄었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일 11개 은행 및 은행연합회와 만나 ‘여신 프로세스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 킥오프 회의’를 열었다. 박충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TF 추진 배경으로 ▲최근 금융사고 양태의 변화 ▲영업점 여신업무의 취약한 내부통제 수준을 꼽았다.

그는 "여신 프로세스상 허점을 잘 아는 내부직원이 승진‧투자 등 개인적 동기로 부당대출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고 규모도 대형화하고 있다"며 "점포‧인력 축소 등으로 영업점 직원의 업무부담이 증가하며 자체 내부통제상 취약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은행권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어 “영업점장 전결로 처리되는 여신을 대상으로 한 본부부서의 감리는 대폭 축소되는 등 영업점 여신에 대한 전반적인 내부통제 수준이 약화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경영공시에 따르면 지난 4년 3개월 동안 은행 영업점과 인원은 각각 6.5%, 5.3% 줄었다. 금융사고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 2020년 1분기 4195개, 7만1413명이었던 영업점과 직원 수는 올 6월 3920개, 6만7557명으로 각각 275개, 3856명이 감소했다.

하지만 은행권은 규모 감축으로 업무 부담이 증가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A 은행 관계자는 “애초에 점포 수가 왜 줄었는지는 점포에 직접 가보면 안다. 비대면 금융이 활성화됨에 따라 고객이 점포에 오지 않으면서, 즉 일이 한가해지면서 통폐합 하는 것이다”라며 “게다가 A지점과 B지점을 하나로 합친다고 한 지점의 업무량이 두 배가 되지도 않는다. 효율화를 위해 통합한 것인 만큼 인원과 업무량을 여타 지점으로 분산하는 등 여러 요소를 반영한다. 이를 금융사고와 엮는 건 영업점에 오래 근무해온 입장에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 점포와 직원이 줄어드는 동안 금융사고 적발 건수는 꾸준히 감소해 왔다. 5대 은행 금융사고 건수는 지난 2020년 51건, 2021년 48건, 2022년 40건, 2023년 36건이었다.

올 상반기에는 32건이지만 이 역시 올해 발생 건이 아닌 올해 적발 건이다. 각 은행은 금융사고를 공시할 때 사고를 발견한 시점의 피해금액·피해예상금액을 기준으로 작성한다.

예컨대 KB국민은행의 대구 지점 배임(111억원·과다대출)은 2020년 8월 말부터 올해 3월까지, 용인지점 배임(272억원·과다대출)은 2022년 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안양지점 배임(104억원·과다대출)은 지난해 하반기 동안 이뤄졌지만 올 3~4월에 은행 자체감사로 적발돼 공시됐다. 우리은행의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건 역시 2020년 4월부터 올 1월까지 반복적으로 이뤄지다가 8월 금감원에 보고됐다.

금감원은 금융사고 양태변화를 설명하면서 “100억원이 넘는 영업점 대형 대출사고가 2019∼2023년 1건(150억원)에 불과했지만 올해 들어 8개월 만에 7건(987억원)으로 급증했다”고 강조했다. 과거 수 년간 누적된 사고들이 이제 적발됐으니 ‘올해 들어 대출사고가 크게 늘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은행 내부통제를 담당하는 준법지원, 준법경영, 법무지원 등 준법감시 인력은 지난 2021년 427명에서 올 상반기 638명으로 늘었다. 은행들은 준법 감시 인력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금융사고가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B 은행 관계자는 “점포를 없앤 후 대출 업무는 대부분 비대면으로 전환했다. 영업점에서는 상담만 받고 실제 대출 실행은 전부 모바일과 인터넷뱅킹으로 이뤄진다. 우리의 신규 신용대출은 90%가 비대면이다”라며 “이렇게 되면 고객이 직접 서류를 제출하고 은행은 전산상에서 기계적으로 심사하기 때문에 직원 손을 거치지 않는다. 즉 고객이 증빙 자료 제출이나 한도 작성, 약정 등을 직접 모바일에 올리기 때문에 은행원에 의한 서류 조작, 대리결재 등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발생한 대출 사고(우리은행)는 비대면이 불가능한 기업대출이었다. 그래서 직원이 고객 대신 서명하고 대출 서류를 꾸며서 고객이 신청하지도 않은 한도만큼 대출을 일으켜 지점장 대신 결재해 돈을 빼돌릴 수 있었다. 국민은행 배임도 특정직원이 실적을 위해 대출자의 소득을 자의적으로 높게 적용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C은행 관계자는 “영업점 경험상 금융사고는 주로 한가할 때 ‘딴 생각’이 나면서 발생한다"며 "업무가 과중한 곳, 바쁜 곳은 일하느라 정신 없어서 사고칠 틈도 없다. 가만히 보면 최근 시끄러웠던 곳은 대부분 지방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내부통제를 아무리 강화하면서 ‘금융사고는 반드시 100% 잡힌다’고 교육해도 개개인이 악한 마음을 먹으면 사고는 일어난다"며 "세콤을 이중 삼중 해놓은 집이어도 도둑이 작정하고 덤비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안전장치를 최대한 많이 해놓고 빨리 잡고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잡히니까 당국에서 엉뚱한 영업점과 인원까지 들먹이면서 그런 쪽으로 몰고가는데, 그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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