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파나마의 독립과 함께 추진하며 성공
글로벌 무역 패러다임에 지대한 영향
[글·사진=신나리 파나마 통신원] 남편의 인사발령으로 7년간의 이집트 카이로 생활을 마치고 얼마 전부터 파나마에서 살고 있다. 졸지에 중동지역에서 중남미로 옮겨 온 이동거리의 스케일도 그렇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서 카톨릭 문화권으로의 변신은 기대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하물며 두곳 모두 더위에 관한 한 어디에도 뒤지지 않겠지만 그 더위의 색깔에서도 적잖은 차이가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직전에 지중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가 있던 곳에서 지내다가 이번에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운하가 있는 파나마로 옮겨 왔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 회장이 '위대한 건축물'로 언급
파나마 운하는 지난해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몇 차례의 간담회에서 인간의 가장 위대한 건축물로 언급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회장은 "거대한 풍경도 장관인데, 인간의 지혜와 노동력으로 위대한 자연의 힘을 활용했다는 것이 놀랍고 황홀하다"고 말했다.
나는 요즘 파나마 운하를 가로지르는 어메리컨 브릿지를 수도 없이 지나 다닌다. 이 다리 아래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온 수많은 선박들이 파나마 운하를 거쳐 또다시 망망대해로 나아간다. 1년에 1만5000척이 넘는 컨테이너 선들이 지나다니고 전세계 물동량의 6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이곳 파나마 운하.
나는 그 역사가 궁금했다. 도대체 누가 이 척박하고 더운 파나마 땅에 이런 거대한 건설물을 지은 걸까?신이 만든 대륙을 갈라서 새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이들은 누구일까?
16세기 초,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는 미지의 정글 속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직접 연결할 수 있는 경로를 꿈꾸었다. 당시의 기술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경로는 그의 상상력 속에서만 존재했지만, 인류의 탐험과 혁신에 대한 열망을 자극했다. 코르테스의 꿈은 이후 세대에 영감을 주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프로젝트의 서막을 열었다.
1881년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기술자였던 페르디난드 마리 드 레셉스는 코르테스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1869년 10년간의 공사 끝에 수에즈 운하를 개통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힘입어 파나마의 열대 정글 속에 새로운 해상 경로를 개척하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레셉스의 야심찬 계획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는 운하 건설을 결정하기 전에 파나마를 직접 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파나마에 처음 도착 했을 때 그곳은 습도 90%를 넘는 열대우림으로 뒤덮혀 있었다. 1년에 8개월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작업을 하다가도 물이 불어나기 일쑤여서 작업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수에즈운하의 성공에 고무된 프랑스 정부는 파나마운하 건설을 위해 약 4억 5000만 프랑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열악한 환경과 질병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공사기간 중 수많은 노동자들이 말라리아와 황열병에 시달렸고, 2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엄청난 인명 피해와 막대한 비용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채, 레셉스와 프랑스의 꿈은 9년 만에 좌절됐다.
사라지는 듯했던 파나마 운하의 꿈을 되살린 것은 미국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었다. 당시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루즈벨트 대통령은 파나마의 독립을 지원하면서 새로운 해상경로를 열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군사적 지원과 외교적 압박 덕분에 파나마는 1903년 11월 3일, 콜롬비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고 그 직후 미국과 파나마는 '헤이-바나우-베라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미국은 파나마에 운하를 건설하는 책임을 지되 운하 운영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 주된 골자였다.
조약 체결 이후 운하건설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904년, 해리슨 프레이저와 그의 팀은 열대 정글 속에서 운하 건설을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약 4만명의 노동자들은 미국, 아프리카 , 중국,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출신들이었다.
건설기간 동안 미국은 말라리아와 황열병 등으로 노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소독제와 비누를 준비하고, 방충망 등을 만들어 청결을 위해 힘을 썼다. 심지어 모기 한 마리를 잡으면 10달러를 주는 파격적인 이벤트까지 만들어 가며 모기 퇴치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황열병과 말라리아는 서서히 사라졌다.
운하 건설에는 당대의 혁신적인 기술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기술은 '락 시스템(lock system)'과 '수문 시스템(gate system)'이었다. 락 시스템은 수로의 수위를 조절하여 대형 선박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을 원활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시스템은 각각의 락에서 선박을 들어올리고 내리는 기능을 하며, 이를 통해 선박이 운하의 상하 단계를 넘나들 수 있었다. 이같은 기술적 시도는 이전까지 없던 도전이었고, 오늘날에도 건설기술 역사상 기념비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열악한 환경탓에 5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미국은 신의 영역을 뛰어넘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건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1914년, 파나마 운하의 개통을 위한 준비를 끝냈다. 개통식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두 바다를 연결하는 위대한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선언하며 세계의 무역 흐름의 새 역사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꾼 파나마 운하
파나마 운하의 개통은 세계 경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운하가 개통되기 전에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항로는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를 지나기 위해 남미 대륙의 끝을 돌아야 했다. 이 항로는 약 1만5000킬로미터에 달했으며, 선박이 약 2주에서 3주가량 걸쳐 항해해야 했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의 개통으로 항해 거리가 약 8000킬로미터 단축되었고, 항해 시간도 1주일 정도로 줄었다.
덕분에 선박의 연료 소비와 운송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 운하를 이용하면 연료 비용이 약 40% 절감될 수 있었고, 전체 운송 비용도 크게 낮아졌다. 예를 들어, 아시아와 유럽 간의 무역에서 이전에는 막대한 연료와 시간 비용이 소요되었지만, 운하 개통 후에는 연료와 비용이 절감되면서 무역의 수익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또한, 항해 시간이 단축됨으로써 물류의 회전율이 높아졌고, 이는 국제 무역의 효율성을 크게 증대시켰다.
파나마 운하는 무역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이 운하는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교역로로 자리잡았고, 특히 미국과 유럽, 아시아 간의 교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의 산업 제품과 자원들은 이제 더 빠르고 경제적으로 국제 시장에 공급될 수 있었고, 이는 미국 경제의 성장과 연결성을 크게 강화했다.
운하는 또한 글로벌 물류의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 주요 해운 회사들은 운하를 이용하여 새로운 해상 루트를 개척할 수 있었고, 이는 국제 무역의 흐름을 더욱 원활하게 만들었다. 운하는 대형 선박의 통행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는 대규모 화물 운송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파나마 운하는 국제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운하를 관리하며 전 세계의 해상 교통을 통제할 수 있었고, 이는 국제 무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크게 강화시켰다. 운하의 전략적 위치는 미국의 군사적 이익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파나마와 미국은 ‘토리조스-카르테르 조약’을 체결하며 1999년 12월 31일에 운하의 경영권을 파나마에 이양하기로 합의했다. 이 결정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압력과 미국 내 정치적 여론에 의해 이루어졌다. 미국은 지역 내 정치적 갈등을 완화하고, 경제적 협력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경영권을 파나마에 넘기기로 했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재편성한 파나마 운하는 단순한 물리적 구조를 넘어, 인류의 도전과 협력,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운하의 역사는 기술적 혁신, 정치적 변동, 그리고 경제적 파급 효과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서사로, 인류가 자연과 싸우며 만들어낸 위대한 업적을 담고 있다.
파나마의 인구는 350만명 안팎이다.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1/3, 남한의 3/4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부분 이 열대 우림지역이다. 아직도 정글 깊은 곳에는 수천년의 시간을 그대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있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도 많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21세기 최고로 위대한 건축물이 세계의 길역할을 하며 버티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나라, 파나마는 나에게 미지의 세계다. 앞으로 이 나라를 포함한 중남미 세계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
Hasta luego(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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