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일 칼럼니스트] 고시엔(甲子園)은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西宮)시에 있는 동네 이름이다. 또 야구장 이름이기도 하다. 현재 일본 프로야구 한신(阪神)타이거스가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60갑자의 ‘갑자년(甲子年)’인 1924년에 완공됐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고, 동네 이름마저 고시엔으로 바뀌었다. 올해가 개장 100주년이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시엔을 야구대회 이름으로 알고 있다.
고교 야구팀이 4000 개에 달하는 일본에서는 매년 3월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선발 고교 야구대회’를, 매년 8월 아사히(朝日)신문이 ‘전국 고교 야구선수권대회’를 각각 주최한다. 고시엔구장이 완공된 이후로는 둘 다 이곳에서 경기가 열려 이를 각각 ‘봄 고시엔’과 ‘여름 고시엔’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클럽팀을 포함해 90여 개에 불과한 고교 야구팀이 일본에 많은 이유는 순수한 취미활동으로 야구를 택하는 곳이 많아서이다. 학업과 스포츠를 병행하는 분위기로 ‘엘리트 야구’와 ‘생활 야구’가 공존한다. 이에 따라 아무리 전국대회라도 정규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봄방학과 여름방학을 이용하기 때문에 전국대회가 2개뿐이 없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 주최 ‘봄 고시엔’은 선고(選考)위원회가 32개 출전팀을 뽑는 방식이다. 단, 5년마다 기념 대회라고 하여 4개 팀을 추가한다. 이 대회를 ‘센바스(選拔)’라는 약칭으로 부르는 까닭이 바로 이 ‘선발’에 있다.
역사는 ‘여름의 고시엔’이라 불리는 아사히신문 쪽이 오히려 오래되고 더 큰 행사로 꼽힌다. 1915년에 시작됐다. 이 경기는 광역 지방자치단체별로 예선을 거쳐 출전팀이 정해진다.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에 한 팀씩인데, 인구가 많은 도쿄와 땅이 넓은 홋카이도(北海道)는 2팀을 배정하여, 모두 49개 팀이 나선다.
여름 고시엔 대회는 오로지 실력으로만 지역대회를 통과해야 하므로 본선 출장만으로도 실력이 검증되는 셈이다. 특히 동도쿄, 서도쿄, 오사카, 교토 지역은 강호가 많아 더더욱 그렇다.
1926년 제12회 대회에는 조선, 대만, 만주 대표도 참가한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프로야구 출범 후 고교 야구 열기가 식었지만, 일본 고시엔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그 예로 일본 공영방송 NHK가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1회전부터 결승전까지 생중계한다. 지상파 TV들도 뉴스에서 빠짐없이 고시엔 경기 결과를 분석한다. 따라서 우승하면 거의 모든 일본 국민이 그 학교 이름을 알게 된다.
고시엔은 인사로 시작해 인사로 끝난다. 인사는 대체로 이긴 팀이 허리를 더 숙이고, 진 팀 선수들이 고개를 들어야 허리를 세운다. 또 경기마다 이긴 팀 교가가 구장에 울려 퍼진다. 이때 진 팀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상대 팀 교가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를 꼿꼿하게 유지한다 이것이 예의다.
그리고 진 팀 선수들은 눈물을 훔치며 열심히 운동장 흙을 봉지에 쓸어 담는다. 대회 마지막 날에는 우승 팀 3학년 선수들도 ‘굿바이 고시엔’이라며 흙을 담아간다. 평생 간직할 기념품이 된다.
일본에서는 전국 고교생 만화 경연대회를 ‘만화 고시엔’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고시엔을 하나의 대명사로 오마쥬(hommage)한 것이다.
고시엔은 태평양 전쟁 중에 5년간 중지된 것을 빼고는 해마다 열려온 고교 야구 선수들을 위한 꿈의 무대다. 매년 일본 열도 전체를 들썩거리게 하는 초대형 행사로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화제도 많다.
2020년 한 일간지가 10대 국내 뉴스 중 하나로 뽑은 것이 ‘코로나로 인한 고시엔 중단’이다. 그만큼 일본인들에게는 고시엔이 중요하다.
2006년 이른 봄. 홋카이도 삿포로(札峴)역 앞에 신문 호외가 뿌려졌다. 고시엔에 나가기로 한 그 지역팀이 출전을 포기했다는 뉴스였다. 3학년 선수들이 술집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다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고시엔의 인기와 관심이 이 정도다.
또 어떤 해에는 여름의 고시엔을 향한 지역 예선전에서 전무후무한 신기록이 세워졌다. 7회 콜드게임. 스코어는 무려 122대 0. 무참하게 패배한 팀은 한적한 북쪽 어촌 마을 고등학교. 워낙 학생 수가 적어 간신히 9명 선수를 채운 팀이었다. 안타 86개, 포볼 33개, 도루 76개를 허용했다 자신들이 친 안타는 0개, 삼진만 16번 당했다. (출처 : ‘상징어와 떠나는 일본 역사 문화 기행’)
올해는 일본 전역 3441개 팀이 참가해 역시 49개 학교만 본선에 올랐다. 여기서 재일한국계 교토(京都)국제고가 사상 첫 고시엔 정상에 섰다.
올해 제106회 여름 고시엔 본선 결승전에서 도쿄도 대표 간토다이이치고를 연장 접전 끝에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전통대로 지역에서 호외가 뿌려졌다.
교토국제고 선수들과 응원을 온 학생들은 고시엔에서 승리할 때마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이라는 한국어 교가를 떼창했다. 물론 이 장면은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중계됐다.
교토국제고는 1947년 해방 이후 교토에 사는 재일 교포들이 후세의 우리 문화와 우리말 교육을 위해 세운 민족학교다. 처음 이름은 교토 조선 중학교였다. 이후 저출생 등으로 학생 수가 줄면서 학교 이름도 바꾸고 일본 학생을 끌어들이기 위해 야구부도 만들었다.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 등 3개 국어로 수업한다. 입학하면 주 3~4시간씩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로만 진행하는 수업도 있다.
최근에는 K팝(한국 대중음악) 등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학생들 지원이 늘면서 현재 전교생 160여 명 중 90%가량이 일본인이다.
그럼에도 교토국제고의 경기는 일본 경찰과 주일(駐日) 한국 공관이 긴장한 가운데 펼쳐졌다. 한국계 학교가 고시엔에 진출하고, 한국어 교가가 전국에 방송되면서 일부 일본 극우 세력이 반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일본 경찰에 학생과 선수 보호를 요청했고, 선수들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다른 출입구로 야구장에 입장했다.
학생 수 160여 명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인 교토국제고가 고시엔 우승을 차지한 것을 두고 일본 내에서도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재일교포들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그동안 차별에 의한 설움과 울분, 고생 등을 생각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애국심도 다시 한번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선수 15명 중 한국 국적은 한 명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그는 교가를 부를 순 있는데,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른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또 학교 내부에서는 교가를 바꾸자는 의견도 오래전부터 나왔다고 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일본인들끼리 시합을 한 것이고, 한국계 학교를 알리고,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진 것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우승이 역사와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해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칫 과잉 반응으로 보일 수 있겠다. 국내에 있는 외국인 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들이 야구대회에서 우승한 것과 다름없다.
그저 열악한 환경에서 어린 학생들이 노력해 큰 결과를 얻었고 한국계 학교가 홍보되고, 한국어 교가가 전국에 생중계로 울려 퍼진 것에 의미를 두고 만족하는 것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덧붙여 재일교포들이 학교를 세우고 지금껏 국가와 민족을 잊지 않기 위한 노고를 알게 됐고 앞으로도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도.
한편, 근성과 복종 그리고 집단을 강조하는 제국주의 상징인 ‘까까머리’가 여전한 고교 야구 선수들을 보고 변하지 않는 일본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도 됐다.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