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긍호 장군에서 데니스 텐까지, 1백년의 수난과 긍지

만주~연해주~카자흐스탄으로 이어진 한민족의 고난이 점철된 가족사 김인영 기자l승인2018.07.2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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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피겨스케이팅 선수 데니스 텐이 지난 19일 오후 6시(현지시간) 병원에서 숨졌다. 그는 이날 점심때 자신의 고향인 알마티 시내 교차로에서 자신의 자동차 백미러를 훔치려던 자들의 칼에 찔려 목격자들이 부른 구급차에 실려 알마티 중앙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끝내 사망했다.

데니스 텐의 죽음은 카자흐스탄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지만, 그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람들에게도 큰 아픔을 안겨주고 있다. 더욱이 그가 대한제국 시절에 일본에 항거한 의병대장 민긍호라는 점에서 우리 역사의 슬픔과 후손들의 고난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뮤지션과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던 25세의 청년, “저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카자흐스탄인”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던 카자흐스탄의 피겨 스케이팅 영웅.

데니스 텐(Denis Yurievich Ten, 1993년 6월 13일~2018년 7월 19일)은 고조할아버지 민긍호 의병장을 마음 깊이 새기는 카자흐스탄인이었다.

 

▲ 카자흐스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선수 데니스 텐 /트위터

 

민긍호(閔肯鎬, ?~1908.2.29.) 선생은 명성황후를 배출한 조선 명문가 여흥 민씨의 일족으로 태어났다. 1897년 선생은 진위대에 입대해 군인의 길을 걸었으며 이후 강원도 원주 진위대 산하에 배속되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서울 시위대가 무장 투장을 전개했다. 선생은 그해 8월 5일 원주 진위대 병사들을 이끌고 봉기했다. 선생은 장병들을 집합시켜 “나라에 병사가 없으면 무엇으로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군대를 해산하라는 명령에 복종할 수 없다.”면서 무장 봉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무기고를 열어 병사들을 물론 봉기에 호응한 일반 민중들에게 총기와 탄약을 분배해 의병부대를 편성했다.

선생은 약 300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원주 우편취급소와 일본경찰을 습격, 3시간 동안 격전을 벌였다. 이후 의병부대를 소단위로 재편성해 제천·죽산·장호원·여주·홍천 등지에서 유격전을 펼쳤다.

민긍호가 거느린 의병부대는 당시 강원도 일대에서는 가장 세력이 큰 부대였다. 선생의 부대는 강원도·충청도·경상도 일대에서 게릴라전을 벌여 10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해를 넘겨 1908년 2월 29일 선생이 지휘하는 의병부대는 원주에서 일본 군대를 만나 전투를 벌이던 중 일본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원주에 있는 민긍호 의병장 묘소를 참배하고 있는 데니스 텐 /KBS 캡쳐

 

민긍호 선생이 순국하자 일본은 스파이를 파견해 민 장군 가족을 감시하고 다 죽이려 했다. 이에 민 장군의 부인과 자녀들은 급히 몸을 피해 만주로 피신했다.

두만강을 건너 북만주로 피신한 가족들은 그곳에서 안중근 의사를 만난다. 안중근 의사는 민씨 가족들을 돌보아 주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자 가족들은 다시 몸을 피해야 했다. 그들은 러시아 땅 연해주로 피신했다.

연해주에서의 삶도 고단했다. 장군의 부인 혼자 가정을 꾸려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1937년 소련 스탈린이 연해주 한인을 기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부인은 가족을 이끌고 열차를 탔다. 열차는 음식도 물도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오랫동안 힘겨운 이동이었고, 고난의 여정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죽었고, 데니스 텐의 할머니는 이때 동생 5명을 잃었다.

도착한 곳은 카자흐스탄. 이 곳에서 그들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카자흐스탄에서 민긍호 장군의 아들 민영욱씨는 안톤과 레오니드, 세레나, 알렉산드라 등 2남 2녀를 뒀고 현재 두 딸과 그 후손들이 50여 가구를 이루고 있다. 데니스 텐은 세레나씨의 외손자다.

데니스 텐은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데니스 텐의 할머니는 가난 속에서도 밤낮 없이 공부를 해 의대에 입학했다. 데니스 텐은 연초 KBS 인터뷰에서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의병장을로 둔 덕분인지 장군과 같았다. 뻣뻣한 성격에 엄격했다.”면서 “할머니의 심장을 녹일수 있는 것은 피겨였다고 회고했다.

 

▲ 민긍호 의병장의 부인과 가족들 /KBS 캡쳐

 

데니스 텐은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의병장의 자손이자 고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던 한국계 젊은이었다.

데니스 텐은 KBS 인터뷰에서 원주에 있는 고조할아버지 민긍호 장군의 묘지에서 돌을 주워 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를 할 때마다 항상 돌을 가지고 다닌다. 미신을 잘 믿지는 않지만 행운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물건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데니스 텐은 1993년 카자흐스탄의 대도시 알마티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씨 텐(Ten)은 한국의 정(丁)씨를 러시아어에서 쓰는 키릴 문자로 표기한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소수 민족인 고려인으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썼고, 4살 때 스케이트를 처음 탔다. 스케이트를 타면서 음악 활동도 병행해 합창단원으로도 활동했다.

2002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린 피겨 대회에 참가하면서 처음 조상의 나라를 방문했다.

그는 전문적인 피겨 지도를 받기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2006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카자흐스탄 선수권에서 우승했다. 2006년~2007년 시즌부터 카자흐스탄 대표로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2008년 벨라루스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골든링크에서 우승해, 카자흐스탄의 남성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처음 국제 스케이팅 연맹이 주관하는 경기에서 메달리스트가 되었고, 곧이어 한국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참가하여 5위에 올랐다. 2009년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8위에 올랐다. 2010년 대한민국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서 10위를 하였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해서 11위를 기록하였다.

2011년에는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와 알마티에서 열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피겨스케이팅 남자 프리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2년과 2013년 시즌에 기량이 급성장하여, 2013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며, 카자흐스탄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입상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해, 카자흐스탄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오른발 인대를 다쳤으나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불참할 수 없다며 참가를 강행하기도 했다.

 

▲ 민긍호 의병장의 아들과 며느리 /KBS 캡쳐

 

데니스 텐은 연초 평창올림픽 앞두고 고조할아버지 민긍호 장군의 묘소를 참배했다. 그는 KBS 인터뷰에서 “나와 가족들에게 절대로 중요했던 것은 우리가 어떤 뿌리를 가진 가족인지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민 장군의 비석에 갈라진 틈을 보고는 “스케이트 자국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에도 무덤에서 돌을 하나 주었다. 아마 그 돌도 그의 무덤에 함께 묻혀지지 않을까.

민긍호 선생과 데니스 텐까지 5대에 걸친 100년의 세월은 우리만족의 수난의 역사이기도 하고, 그가 카자흐스탄 국가대표 선수로 뛰게 된 것은 한민족의 긍지이기도 하다.

 

▲ 데니스 텐의 손에 들어 있는 고조할아버지 묘소의 돌 /KBS 캡쳐

김인영 기자  op@o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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