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영등포 일대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과 인연이 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중국과 인연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영등포 일대를 답사하다 보면 중국어가 자주 들리는가 하면 중국어 간판도 흔히 볼 수 있으니까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후 지난 30여 년간 중국 본토에서 이주한 중국인과 한국계 중국인이 영등포 일대에 많이 거주하거나 일하고 있어서 생긴 현상일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오래전에 한국 땅에 정착한 중국인, 즉 화교들도 영등포 일대에서 정착한 걸로 보입니다.
‘영등포화교소학교’와 ‘영등포 중화기독교회’
한반도에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한 건 1880년대부터입니다. 당시 일본이 조선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는데 청나라도 조선에 대한 연고권을 강화하기 위해 백성들을 이주시킨 게 그 시작이었습니다.
청일전쟁 후 중국으로 돌아간 청나라 상인들이 많았지만, 조선에 남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영등포 일대에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1935년경 신문을 보면 영등포 일대 화교 52명이 친목회를 결성했다고 하는데 이후에도 영등포 화교 친목회 모임 관련 기사가 계속 검색에 걸립니다.
과거 영등포 일대에 화교 인구가 많았을 거로 짐작하게 하는 시설이 있습니다. ‘영등포화교소학교’입니다. 영등포역 앞 교차로에서 경인로를 따라 인천 방향으로 약 800m를 가면 나오는 구로세무서와 기찻길 사이에 있습니다. 행정구역상 문래동입니다.
대로변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경인로 옆 보도를 여러 번 지나 다녔어도 영등포화교소학교가 그곳에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기찻길 옆 오래된 공장들과 쪽방촌을 답사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건물이었습니다.
교문에는 중화민국, 즉 타이완을 상징하는 태양 그림과 ‘1938’이라는 숫자가 보입니다. 아마도 1938년에 이 학교가 설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영등포 화교 친목회가 결성되고 3년 후입니다.
과거 신문 기사를 참조하면, 1938년에 학교를 설립한 후 문래동의 이 터에 학교가 들어선 건 1949년입니다. 이 해에 중국 본토는 공산당 세력이 권력을 잡게 되고 국민당 세력은 타이완으로 밀려났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영등포 일대 화교들이 후손들 교육을 위해 모금한 돈으로 땅을 사 학교를 지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학교 건물은 1976년에 새로 지었습니다.
영등포 중화기독교회도 영등포화교소학교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학교와 구로세무서 사이 길로 동쪽으로 약 100m만 가면 나옵니다.
한국에는 외국인교회가 많은데 그중 중화기독교회는 역사가 깊고 규모가 큰 편에 속합니다. 1912년 중국인 선교사가 주도한 서울 YMCA에서의 중국인 집회를 한국 화교 기독교 신앙의 시작으로 보는데 이후 한성중화기독교회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화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중화기독교회가 있습니다. 영등포는 물론 인천, 부산, 대구, 군산, 수원 등지에 중화교회가 있습니다.
대림2동의 작은 중국
화교소학교와 중화기독교회는 모두 화교 관련 시설입니다. 한국의 화교 중에는 ‘중화민국’ 국적을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영등포 일대, 특히 대림2동에 가면 중국 본토, 즉 ‘중화인민공화국’에 간 듯한 느낌을 줍니다. 조선족이라 불리는 한국계 중국인들이 많이 정착한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대림2동의 인구는 1990년에 약 3만여 명으로 정점을 기록했는데 계속 감소하다가 2010년대부터 다시 인구가 증가하게 됩니다. 한국인 인구는 계속 줄어들었지만, 그 자리를 등록외국인이 차지했습니다.
2015년 4/4분기 서울시 등록외국인 현황을 참고하면, 영등포구 대림2동의 등록외국인은 총 9952명으로 서울시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습니다. 이 중 9866명이 중국인이었는데 한국계 중국인이 8506명이었습니다.
대림2동은 서울에서 중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1992년 한중 수교 체결 이후부터 비롯되었습니다. 2007년부터는 방문 취업제가 실시되며 특히 한국계 중국인의 숫자가 증가했습니다.
처음에는 구로공단과 가까운 가리봉동에 주로 살았는데 2000년대 초중반 가리봉동 일대 재개발 논의가 진행되며 대림2동으로 이주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일자리가 많은 가리봉동과 가까운데다 주거비가 저렴한 동네였기 때문입니다.
즉, 가리봉동이 중국인들에게 한국 사회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이 되어주었다면 대림2동은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 되어준 걸로 보입니다.
이런 대림2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 바로 ‘대림중앙시장’ 주변입니다. 이 지역에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게 되면서 대림중앙시장을 중심으로 식당, 식자재상 등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들이 밀집하며 독특한 상권을 형성하게 된 거죠. 새로운 차이나타운이 탄생이었습니다.
대림역 12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차이나타운에 왔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로변의 여러 점포에서 중국어 안내 방송을 틀어 놓았고 중국어 홍보 문구를 붙여 놓았습니다. 은행 지점도 간판 외에는 중국어 안내입니다. 7호선 대림역이 있는 도림로 도로변에는 거의 모든 건물에 직업소개가 있습니다.
대림역 12번 출구 앞의 ‘도림로38길’로 들어서면 서울의 여느 거리와 다른 풍경을 볼 수 있고 향도 맡을 수 있습니다. 중국식 반찬가게, 중국식 빵 가게, 열대 과일 가게 등이 골목을 메우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어보다는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립니다.
식당도 한국식 중국요리가 아니라 본토에서 먹는 중국요리를 파는 가게로 보입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어느 중국식당에 들어갔는데 짜장면이나 짬뽕 같은 메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대림2동 일대에 중국인이 많다는 걸 느끼게 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중국인 전용 예식장과 상조회사입니다. 중국인들이 결혼식을 하거나 각종 행사를 펼치는 예식장과 중국식 장례를 도와주는 상조회사를 이 거리 중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 도림로의 한 예식장 건물 앞에 장의차가 서 있었습니다. 인간의 대표적인 통과의례의 순간을 같은 장소에서 목격할 수 있을 정도로 대림2동 일대에 중국인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인 인구 감소세
그런데 2020년을 기점으로 대림2동에서 중국인 인구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4년 2/4분기 서울시 등록외국인 현황을 보면 대림2동에 총 5767명의 중국인이 살고 있습니다. 2015년 거의 1만 명에 가까웠던 수치와 비교하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코로나 영향을 들기도 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간 중국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실 서울과 주변 도시에 보면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 등을 꽤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자리 잡은 중국인들도 어쩌면 그 출발은 영등포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미국 등 해외에 사는 한국 동포들이 한인타운을 작은 한국으로 생각하듯 한국에 사는 중국인들은 영등포의 대림2동을 작은 중국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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