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딜레마에 빠진 각국 중앙은행...그럼에도 낙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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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딜레마에 빠진 각국 중앙은행...그럼에도 낙관하는 이유
  • 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 승인 2024.08.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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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글로벌 증시가 8월 초의 폭락 이후 다소나마 안정을 되찾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난 7월의 고점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다. 이번 폭락을 만들어 낸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가격 하락자체의 충격과 함께 투자자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외에 또 하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번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모든 국가의 통화당국은 항상 신뢰 확보에 최선을 다한다. 스티글리츠 등 일부 학자들이 소득과 자산 불평등, 그리고 나아가 경제 시스템의 불안에 통화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의도이기 보다는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한다. 즉, 전체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해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책의 불신을 키우는 통화당국은 적어도 주요 선진국에서는 없을 것이란 얘기다. 

딜레마에 빠진 각국 중앙은행

현재 주요국 통화당국이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고,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심을 사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코로나19 이후 극단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통화정책 의사 결정 하나 하나에 대한 경제와 금융시장의 민감도가 극도로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연준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딜레마, 즉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가능성이라는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물가는 하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목표를 상회하는 수준을 기록 중이고, 실물 경제지표 특히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와 고용 지표에서 시장 예상을 하회하는 부진한 결과가 나오면서 경기 둔화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고물가와 경기 위축 가능성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연준이, 경제 주체들의 심리 변화에 따른 급작스러운 경기 침체를 방어해 연착륙으로 유도하는 좁은 길을 성공적으로 찾을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최근 자국을 위시한 글로벌 증시 급락의 트리거를 제공한 일본 중앙은행(BOJ) 역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전통적인 물가·경기 딜레마에, 엔화 약세의 긍정적인 측면을 상쇄하기 시장한 부작용과 금리 인상이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금융시장 불안이라는 딜레마가 더해진 상태다. 특히 최근 선택한 금리 인상이 일본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면서 고민이 더해졌다. 금융시장 충격이 겨우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일본 경제를 다시 침체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BOJ는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경제의 안정적 성장과 금융시장 안정을 모두 지켜낼 수 있을까?

한국 역시 고유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물가와 경기도 문제지만,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와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이라는 딜레마가 그것이다. 금리를 높게 유지할 경우 가계의 이자 부담이 내수 경기 회복을 늦출 수 있으며, 금리를 인하할 경우 부동산 거품이 더욱 커질 위험이 있다. 특히 한국은 너무 빠른 고령화와 인구 감소, 그리고 너무 빨리 올라 버린 주요 생산 요소의 비용이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은행이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를 최소화해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고, 부동산 시장과 가계 부채의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까?

실제로 각국 중앙은행에 대한 이러한 질문은 사실 쉽게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과거 잘못된 선택들의 경험이 분명 존재하고, 이를 반복하지 말라는 법 역시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70년대의 물가 불안, 2008년 금융위기 전의 자산 버블 형성, 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 거품 및 부동산 프로젝트 금융의 부실화 등 각종 문제의 원인과 과정에는 분명 중앙은행의 잘못된 의사 결정이 영향을 미쳤다. 사실 이번에 나타나고 있는 신뢰성 문제 제기 역시 이 같은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어느 시점에서나 이러한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과 이러한 굵직한 사례가 수십 년에 한 번씩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과거 경험을 보면 적어도 ‘선진국’ 중앙은행의 경우 몇 차례의 중대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앞선 질문, 즉 딜레마 상황에서의 선택이라는 질문에 대해 적절한 해법을 내 놓은 경우가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 7월 추가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해 금융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사진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 7월 추가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해 글로벌 금융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사진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실보다 득이 많았던 중앙은행의 역할

비록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 압력과 저성장이 해결되지 않은 일본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미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주요 선진국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데에는 중앙은행의 보이는 손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일본의 경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통화정책의 선택이 현재 성장을 이끌고 있는 동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각종 지표와 경제 현상을 놓고 보더라도, 미국이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나 일본이 다시 디플레이션에 빠질 확률,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나 부동산 금융 문제가 시스템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발표되는 미국의 경제지표는 안정적이고, 연준은 경제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많은 실탄을 보유 중이며, 일본 기업들은 저비용, 고품질, 낮은 통화가치의 수혜로 높은 이익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가계 부채와 부동산 문제는 지난 3년간 수많은 비관론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시스템 위기로 이어지 않았다. 통화정책의 딜레마가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각국 중앙은행은 좁은 복도를 잘 지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면 다시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는 강화될 것이고, 자산가격 역시 장기 상승 추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기업과 소비자의 시계와 투자자들의 시계가 다르고, 중앙은행이 경제를 바라보는 시계가 또 다르며, 통화정책을 비롯한 모든 정책은 정책 시차를 갖기 때문에 증시에서 한번 추락한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증시는 출렁거림을 반복할 수 있다. 따라서 계속해서 통화정책과 그 결과로서의 경제지표를 모니터링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과거 통화 당국의 정책 실패와 신뢰 훼손은 일시적인 경우가 많았고, 통화당국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극심한 경기 침체와 자산가격 하락 가능성보다는 안정적인 경기 연착륙과 자산 가격 상승 전망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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