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혹시 ‘부군당(府君堂)’이라는 공간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요? 저는 부군당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본 게 2019년경 <갈등도시>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도시 문헌학자 ‘김시덕’의 도시 탐사 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 부군당이 여러 군데서 언급되었습니다.
<갈등도시>에서 김시덕은 민속학자 김태우 등의 연구를 인용해 부군당을 설명했습니다. 부군당은 조선 초기에 관청에서 아전, 하인, 노비 등이 모시던 신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관청 밖으로 퍼지면서 신흥 자본가 계급의 신앙 대상으로 모셔지게 되었는데 특히 한강 인근 상업이 활발한 곳에서 부군당 신앙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김시덕의 도시 탐사 시리즈 세 번째 책인 <한국 문명의 최전선>에서도 부군당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 고려 시대에 개성에서 물길을 따라 부군당 신앙이 서울까지 전파되었는데 그 중간에 자리한 교동도에도 부군당이 있다면서요. 교동도에 유배되었던 연산군을 모시는 이 부군당은 부근당이라 불리기도 한답니다.
신길동 ‘방학곳지 부군당’
한강 물길이 지나는 영등포 일대에는 도당이나 신당 등 다양한 민간 신앙 공간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부군당도 있는데 신길동과 당산동 등 두 군데에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과거 영등포시장 일대에 상방아곶 마을이 있었다고 언급했었습니다. 그런데 상방아곶이 있었다면 하방아곶도 있지 않았을까요? 하방아곶 마을, 즉 경기도 시흥군 하북면 하방아곶리는 샛강 변에 있었는데 1914년에 인근의 신길리와 합쳐져 지금의 신길동이 되었습니다.
상방아곶과 하방아곶 이름의 유래가 된 방아곶의 의미는 두 가지가 전해집니다. 방아곶, 혹은 방앗고지는 성안으로 실어 가는 곡식을 빻는 방앗간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한문 지명인 방학동은 신길동과 여의도 사이를 흐르는 샛강의 경치가 빼어나 학이 노는 호수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우리 말 이름이든 한문 이름이든 샛강 일대 신길동의 지리적 환경에 맞춰 붙여진 이름인 건 확실해 보입니다. 과거 신길동의 샛강 변에는 마포나루와 연결되는 ‘방학호진’, 혹은 ‘방아곶 나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학곳지 부군당’도 있습니다.
신길역이 있는 대로변에서 부군당을 찾아가려면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나야 합니다. 지도에서 이 동네의 필지 모양을 보면 전통 마을의 전형적 구획 모양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하방아곶 마을의 흔적이 아닐까요.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앞에 가면 ‘방학곳지 부군당’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내를 따라 가면 구획이 복잡해 보이는 골목이 나오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갈림길 담장에 부군당으로 향하는 약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방학곳지 부군당은 주택가 사이 작은 필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로 세로가 약 7m와 5m 정도의 공간에 전통 양식의 작은 집이 한 채 있습니다. 철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안내판에는 방아곶 지명 설명과 함께 부군당의 유래가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옛날 윤정승이 물난리로 물에 빠져 정신을 잃었을 때 잉어가 나타나 등에 태워 방앗고지 기슭의 모래밭에 내려 주어 살아나 윤정승이 당을 지어 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부군당 앞 주택의 담장에는 이런 전설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안내판 문구에 따르면 매년 음력 10월 1일 제사를 지낸다고 하네요.
당산동 부군당
당산동에도 부군당이 있습니다. 사실 당산동이란 지명도 전통 신앙과 관련 깊습니다. 마을 언덕에 당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또한 마을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이 있어 단산(單山)이라 했는데, 이곳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어 이를 보호하기 위한 제당을 지어 당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어쨌든 마을 이름이 당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당산동 부군당은 당산중학교를 기점으로 하면 찾아가기 쉽습니다. 당산중학교 후문 입구 쪽에 작은 공원이 있고 그 앞길을 따라 가면 삼성래미안아파트가 나옵니다. 당산동 부군당은 아파트단지 바로 앞에 있습니다. 부군당 주변으로는 주택가가 있고요.
지도에서 삼성래미안아파트와 양평로 사이의 주택가 모양을 보면 필지가 똑바르지 않습니다. 과거 이 지역에 전통 마을이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산동 부군당 앞에는 안내판과 함께 비석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거기에는 1450년에 당이 설치됐고 1974년에 비를 세웠다고 나와 있습니다. 비석에는 관리자의 이름들과 유공자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판에는 당산동 부군당의 유래가 담겨 있습니다. 과거 부군당이 없었던 시절에는 30m 인근의 큰 은행나무에서 당제를 지냈었는데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많은 주민이 이 은행나무로 피해 무사했다고 합니다.
당산동 부군당은 그 덕을 기리기 위한 당집입니다. 당 안에는 아홉 신의 그림이 있다고 하는데 출입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현재 건물은 1950년 4월에 지었고 매년 음력 7월 1일과 10월 1일에 당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안내판에서 언급한 큰 은행나무는 보이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부군당 바로 옆 빌라에 은행나무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건물 색깔이 은행나무잎 색 같기도 합니다.
두 부군당의 유래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곳 모두 물의 위험에서 사람을 구한 걸 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강 물길과 강변 마을의 평안을 비는 영험 있는 공간으로 주민들이 신봉해온 게 아닐까요.
신길동과 당산동에 자리한 부군당 안내판을 보면 매년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2023년 말 영등포구 차원에서 ‘부군당제’가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당산동 부군당과 양평동의 당제 터에서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신길동의 제사를 언급한 최근 자료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신길동의 방학곳지 부군당 부근에서 만난 동네 주민에게 부군당에서 제사를 지내는지 물어보니 관심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예전에 더러 지낸 거 같은데 요즘도 지내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당산동 부군당 인근에서 만난 주민도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젊은 주민은 무슨 공간인지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부군당이 과거처럼 마을과 주민의 구심점이 되는 거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부군당에 관한 자료는 계속 쌓아가려고 합니다. 두 부군당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음력 10월 1일, 즉 올 11월 1일 즈음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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