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글로벌 LFP 배터리 시장 90% 차지
韓 배터리 업계, 2026년 양산 목표 추격
업계 "기술 갖춘 만큼 LPF 양산 문제 없어"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지난 1일 인천광역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국내 배터리 업계의 기술개발 방향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K-배터리 업계는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에너지 밀도를 향상하는 기술 개발에 집중해 왔다. 에너지 밀도가 높을 수록 자주 충전할 필요가 없어진다. 문제는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에 니켈 함량을 높일수록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청라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에서도 중국 업체 파라시시의 NCM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전기차 포비아(공포)'가 확산하면서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나 가격 경쟁력 못지 않게 배터리의 안전성이 소비자 선택의 핵심 기준으로 떠오고 있다. K-배터리 업계 역시 시류 변화에 따라가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가 커지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LFP 배터리 시대 오나
안정성이 배터리 제품 경쟁력의 중요한 고려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시장에 대한 주목도 역시 크게 높아지고 있다. LFP 배터리는 1회 주행거리는 NCM 배터리보다 짧지만 니켈과 코발트가 포함되지 않아 가격이 저렴하고 내부 음이온 구조상 열 안정성이 높다. 이미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중저가 전기차에 LFP 배터리를 탑재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K-배터리 업계는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LFP 배터리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상태다. 현재 국내 기업이 주력하는 NCM 등을 포함한 삼원계 배터리는 한중일이 시장을 삼분하고 있지만 LFP는 중국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글로벌 LFP 배터리 중 95%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전기차용 LFP 배터리는 중국 CATL과 BYD가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는 향후 2~3년 내 LFP 점유율이 삼원계를 앞지를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4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LFP 배터리 점유율은 2020년 11%에서 2021년 25%, 2022년 31%로 증가했다. 올해에는 NCM 배터리를 넘어 점유율 6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증권가의 관측도 유사하다. 지난 2월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LFP 배터리 점유율은 2020년 17%에서 2023년 27%까지 늘어날 것으로 봤다. 또 올해 41%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고, 2026년에는 47%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LFP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가파르게 오르는 이유는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LFP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어서다. 테슬라, 포드, 현대차, 폴크스바겐 등은 이미 자사 전기차에 LFP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고, 적용 모델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GM을 시작으로 BMW, 벤츠, 스텔란티스, 리비안 등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가 LFP 배터리를 채택한 전기차를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LFP 배터리와 소재 수요는 더욱 늘어날 거승로 보인다.
오랜 기간 LFP 배터리를 생산해 온 CATL와 BYD 그리고 중국의 CALB, 궈시안 등 배터리 기업들은 중국 내 광물부터 소재까지 공급망을 갖춘 상태다. 동시에 기술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CATL은 삼원계 배터리와 LFP 배터리의 장점을 혼합한 M3P 배터리를 지난해부터 생산 중이다. M3P는 LFP의 저렴한 가격과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주행거리를 늘린 특징을 갖추고 있다. CATL은 이 배터리를 15분간 1회 충전하면 700km를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LFP 배터리의 향후 시장성이 밝은 건 사실이지만 국내 배터리 업체가 LFP 배터리로 시장에 진출한 시점이 늦은 것 또한 사실"이라면서 "시장을 선점한 중국의 저가 정책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LFP 시장 K-배터리도 깃발 꽂는다
중국이 주도하는 LFP 배터리 시장에 K-배터리 업체들도 본격적인 깃발 꽂기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2일 르노의 전기차 부문 '암페어'와 전기차용 파우치 LFP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CATL, BYD 등 중국 업체 텃밭인 전기차용 LFP 배터리 시장에서 대규모 수주에 성공한 국내 업체는 LG에너지솔루션이 처음이다. 이번 계약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공장에서 생산한 LFP 배터리셀을 르노의 차세대 전기차 모델에 공급한다. 공급 기간은 2025년 말부터 5년 간이며 규모는 전기차 59만대 분인 약 39GWh(기가와트시)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중저가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해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2026년부터 양산하겠다는 일정을 공식화한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해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LFP 제품 개발에 한창이다.
삼성SDI는 2026년 양산을 목표로 LFP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주력인 프리미엄 배터리부터 중저가 배터리까지 폭넓은 라인업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3'에서 LFP 양극재에 망간을 추가해 용량과 출력을 높인 리튬망간인산철(LMFP) 배터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SK온 또한 LFP 배터리를 개발 중이며 2026년을 양산 시점으로 잡았다. SK온은 국내 배터리 3사 중 처음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제작해 지난해 3월 인터배터리 전시회에서 시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석희 SK온 사장은 지난 3월 '인터배터리 2024'에서 "내부적으로 LFP 배터리 개발이 완료됐고, 고객과 구체적 협의가 완료되면 2026년쯤 양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주영 삼성SDI 부사장 또한 "중국 업체들보다 LFP 개발이 늦었지만 이미 LFP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한 만큼 기술 개발 이슈는 없다"며 "우리를 포함해 국내 경쟁사 모두 LFP 양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셀 제조사들이 LFP 배터리 기술개발과 양산체제를 추진하고 있다면 에코프로비엠과 엘엔에프 등 배터리 소재사들은 LFP 소재 개발에 잰걸음 걷고 있다. 이들은 이미 LFP 양극재 시제품 개발을 마치고 배터리 제조사들과 제품 생산을 논의하는 등 LFP 배터리용 소재 사업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포스코퓨처엠도 LFP 양극재 사업 진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양극재 제조사뿐 아니라 동박 제조사인 롯데에너지머티얼즈도 LFP 양극재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이 외에도 K-배터리 업계는 향후 주행거리와 안정성 두 마리 토끼를 사냥하며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해 니켈 비중을 50~60%로 낮춘 '미드니켈 배터리'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니켈 비중을 낮추면서도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안정성과 성능을 높이겠다는 목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열 안정성을 30% 이상 높인 고전압 미드니켈 배터리 양상을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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