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8월 첫 주에 비해 많이 안정됐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이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급격한 하락은 멈췄으나, 변동성이 크고 비관적인 전망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결국 미국의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 단기적으로는 이번에 증시 하락의 트리거로 작용한 엔캐리 트레이딩의 청산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우려, 나아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긴장 등 증시 불안을 가중시킬 만한 분석들이 투자자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불안한 전망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전개될 때, 그렇지 않은 투자자들도 있겠지만,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단기 대응에 나서면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지금 팔고 조금 더 낮은 가격에 사면 이익이라는 마음이 조급증을 불러 일으키고,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성공적인 대응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많은 개인투자자들은 합리적인 판단과는 거리가 먼 고점 매수와 저점 매도로 인해 자산 가치를 방어하는 데 애를 먹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투자 가치의 중요성
그렇다면 변동성이 커지고, 비관적인 전망이 늘어나는 시장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결국 장기 투자 전략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 그나마 나은 답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5년 이상의 투자 기간을 얘기하는 주식 장기 투자 전략은 많은 전문가들의 옹호에도 불구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전략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장기 투자 전략은 표면적으로 투자 방치와 유사해 보이기 때문에,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는 ‘오래 보유했지만 수익률이 별 볼일 없다’, ‘워렌 버핏이라 할지라도 장기 상승 추세가 미약했던 국내 증시에서 실패했을 것이다’ 등의 말로 평가 절하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볼 때 장기 투자 전략은 기본적으로 신중하게 선별된 자산을 장기간 보유하면서도, 주기적으로 재평가하고 시장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자산을 재조정하는 전략적 행위를 포함하며, 결과적으로 상당한 실적을 보여주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한 번 투자한 후 지속적인 관리나 조정 없이 어느 순간이면 올라 있겠지 라는 마음을 갖고 방치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개념이고, 실제로 그 결과는 좋았다는 얘기다.
특히 장기 투자와 관련하여 유명한 가치투자 이론가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증시는 단기적으로 기업의 인기를 집계하는 투표기 역할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내재가치를 측정하는 체중계"라고 말하며 우량한 기업의 장기 투자가 갖는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처음으로 시장 전체를 사는 인덱스 펀드를 만든 뱅가드의 존 보글 역시 기본적으로 주식 투자는 장기적인 기업의 수익을 향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신중한 기업 선택과 심리의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바늘을 찾기 보다는 건초 더미 전체를 사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긴 하지만, 투자수익률은 결국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의 이익에 달렸다는 얘기인 것이다.
물론 일부 투자자들의 지적대로 한국에서는 워렌 버핏과 같은 장기 투자자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가 몇 가지 있어 왔다. 무엇보다 주요 대기업들의 경우 대주주나 창업주 가족에 의해 지배되는 경우가 많아,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고 투명성과 책임성이 떨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정부 정책이 자주 바뀌고 특정 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거나 완화되는 등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 (관점에 따라서는 원인이기 보다는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한국 투자자들이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 스스로 시장 저평가를 부추기고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건에서 점차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일단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은 그 동안 개인투자자들이 꾸준하게 지적해 온 일반투자자의 권익 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나며 기업 이익의 가계 순환이 갖는 중요성과 소액 주주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주주환원에 소극적이었던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들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압박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적절한 장기 투자 문화가 정착될 가능성 역시 높아지고 있다.
자금 성격과 스케줄에 근거한 투자계획 세워야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주식 장기 투자에 임해야 할까? 무엇보다 자신이 투자할 자금의 성격과 스케쥴을 감안한 투자 계획을 세우는 것이 먼저다.
즉, 일반적으로 5년 이상 기간 동안 주식에서 어떤 정도의 연평균 수익률을 기대하는지, 어느 정도의 누적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지를 적절하게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채권에 투자하는 것보다 3~5% 정도의 초과 이익을 목표로 하고,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연간 기대수익률과 비슷한 정도의 손실이 나타날 수 있고 이 경우 감내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식을 매수할 때 연평균 40%~50%의 투자수익률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은 장기 투자전략을 세울 때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지나치게 높은 눈높이를 만족하는 기업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이를 골라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획이 수립되면 다음으로 적합한 기업을 선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여러 기준이 사용되겠지만, 기본적으로 ▲재무 건전성이 뛰어난 기업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를 갖춘 기업 ▲성장 잠재력이 높은 산업에 속한 기업, 그리고 ▲안정적인 배당을 제공하는 기업 내에서 선택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하며 투자자에게 지속적인 수익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 선정보다 더 중요한 과정은 장기 투자 계획을 유지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정기적으로 재평가하고 재조정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투자자는 반기 또는 연간으로, 또는 시장 환경이 크게 변했을 때, 나아가 개인의 재정 상황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 투자했던 기업의 거버넌스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포트폴리오를 반드시 재평가해야 한다. 특히 가격의 변화로 당초 목표로 했던 자산 배분의 비중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이대로 괜찮은지를 다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또한 투자 성과의 기대치 미달에 미달했을 경우에는 원인을 분석하고, 더 기다리면 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바꿔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런 식의 재조정이 단기 매매하고 다르지 않은 것 같은가? 분명 다르다. 단기 매매는 가격에 대한 대응이지만, 재평가와 재조정은 장기 투자 계획 하의 전략적 의사 결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단기적인 가격 움직임은 다른 투자자들의 심리적 경향성에 크게 의존하지만, 장기 투자의 전략적 의사 결정은 주로 기업의 내재적인 가치에 의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 매매에서는 늘 시장의 분위기를 반영한 고점 매수나 저점 매도가 나타날 수 있는 반면, 장기 투자 전략 원칙을 지키면 특정 이벤트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포트폴리오 내에서 비중이 높아진 주식을 매도할 수 있고, 반대의 경우 매수할 수 있다.
다만, 초기 장기 계획도 변경될 수는 있다. 5년 이상의 기간을 염두에 둔 이상 일반적인 경기 사이클 하에서는 변경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코로나19나 중동 지역 전쟁과 같은 강력한 이벤트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계획 수립 당시 반영되지 않은 이러한 대형 이벤트는 전체 경제와 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계획을 수립하고 지켜 나가는 일은 말로 하는 것과 달리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시장의 변동 하에서 나타나는 심리적인 위축 또는 고양감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각 투자 계획의 수립, 기업의 선정, 재평가와 재조정 등 각각의 과정 역시 앞서 지적한 것보다 더 많은 사안을 고려해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을 두고 볼 때, 장기 투자는 투자자가 시장의 단기적인 소음에 휩쓸리지 않고, 장기적인 목표에 집중하여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투자 성과를 낼 수 있게 해 준다. 지금과 같은 변동성이 크고, 우려 섞인 전망이 등장하는 시기에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할 전략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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