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영등포시장은 영등포시장 사거리와 영등포역 사이의 시장을 말하는데 잘 살펴보면 여러 시장과 상가가 함께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구분이 잘 되어있습니다. 재래시장으로 영등포중앙시장과 영등포전통시장이 있고 두 시장 사이의 건물들과 골목들에 시장 점포들이 있습니다. 영등포로 도로변에 있는 상가 건물들도 영등포시장 구역에 속합니다.
그리고 영등포중앙시장 동쪽 골목들에는 ‘영등포시장기계공구상가’라는 이름으로 지자체에 등록된 시장이 있습니다. 이들 골목에는 공구 등을 수리하는 작은 점포들이 모여 있습니다. 2021년 7월 기준 자료에 369개 점포가 영업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영등포시장 일대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전통 마을이 있던 곳입니다. 신길동의 샛강 변에 있던 방아곶 나루터의 이름을 딴 ‘상방아곶’이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영등포시장과 영등포로터리 사이를 지도로 보면 삼각형이나 마름모꼴, 혹은 비정형의 다각형 필지가 나옵니다. 이 필지들을 가르는 골목길은 반듯하지만 필지 안에는 낮고 작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영등포 관련 연구 문헌들을 보면 과거 ‘상방아곶’ 마을이 있던 자리입니다. 실제 답사해 보면 옛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골목을 볼 수 있습니다.
영등포 연구 문헌을 종합하면, 일제강점기 영등포시장 사거리 주변은 시가지로 발전합니다. 공업지대와 상업시설 등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도 전통 마을의 흔적을 조금은 남겼습니다.
골목시장과 상가시장이 합쳐진 영등포시장
영등포시장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공신력 있는 자료는 극히 적었습니다. 2022년 영등포구에서 발간한 영등포 구지(區誌)를 보면, 2021년 기준으로 22개의 전통시장이 영등포구 있다는데 4개 있는 백화점과 5개 있는 대형마트보다 설명 분량이 적었습니다. 영등포시장에 관한 언급은 한 줄도 없었고요.
다만 영등포시장 영역에 있는 영신상가나 삼구상가에 대한 언급은 한 문장씩 있었습니다. 영등포시장 입구에 달린 시장 간판을 보면 영등포시장의 내력과 정체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간판에는 영등포전통시장이라는 명칭과 함께 ‘1956’이라는 숫자가 보입니다. 아마도 영등포시장이 서울시에 등록된 시점을 의미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간판 양옆으로는 ‘동남·로타리·삼구·남서울·제일·영신’이라는 단어가 쓰인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이는 영등포시장을 이루는 상가 건물들의 이름입니다. 이중 영신과 삼구는 영등포 구지에서도 소개된 상가이고요.
영등포시장 사거리에서 시장을 바라보면 뒤쪽에 동남아파트가 있습니다. 구조를 보면 저층부는 상가, 상층부는 아파트인 주상복합 건물로 1971년에 준공되었습니다. 상가 영역이 시장 골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등포로 도로변에 있는 로타리상가와 삼구상가는 1966년에, 제일상가와 영신상가는 1970년에 준공되었습니다. 시장 안쪽에 있는 남서울상가 또한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걸로 보입니다.
영등포시장 사거리에서 시장을 들어서면 작업복과 안전화를 파는 점포들과 노점이 늘어서 있습니다. 이 시장을 찾는 소비자층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등포 인근의 회사에 다니는 지인에게 영등포시장을 다룰 거라 하니 한 식당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1966년에 개업한 어느 순댓국밥집입니다. 순대와 순댓국을 좋아하는 제가 예전에 몇 번 가본 식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집 말고도 영등포시장에는 순댓국으로 유명한 식당이 여럿 있습니다. 순댓국 골목이 형성돼 있는데 주변에 유흥가가 있어 국밥으로 여흥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덥지만 않으면 들어가 먹었을 텐데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시원한 음식을 찾게 되더라고요. 날 선선해지면 반드시 다시 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영등포시장에는 아는 사람만 찾는 전문 시장도 있습니다. 바로 장난감 시장입니다. 남서울상가 일원에 있습니다. 한때 창신동과 천호동의 장난감 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장난감 시장의 지위를 누렸던 곳입니다.
상인들 기억에 따르면 영등포시장의 장난감 시장은 40년이 넘는 역사가 있습니다. 영등포시장은 서울 서남부와 경기도, 그리고 인천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해 이들 지역의 상인들과 거래하는 도매상으로 자리 잡기 좋았다고 합니다. 장난감, 체육용품, 문구 등을 취급해왔습니다.
장난감 시장이 있는 상가 건물을 돌아보니 1층의 몇몇 점포만 영업하고 있습니다. 간판은 있지만 문 닫은 점포가 많은데 다른 층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래 자체가 많이 준 데다 그나마도 인터넷으로 거래한다고 합니다.
노인들의 해방구일까
올 1월에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이슈가 공론장에 올라와 시끄러웠습니다. 저는 당시 발표 때 인용된 서울시 자료의 수치가 흥미로웠습니다. 노인들의 거리로 알려진 종로3가역보다 무임승차가 많이 이용되는 역이 있었거든요. 바로 영등포역이었습니다.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이 2위였고 경부선 영등포역이 1위였습니다. 1호선 청량리역과 제기동역이 3위와 4위였고요. 물론 3호선과 5호선의 종로3가역 이용객을 합치면 순위가 달라지겠지만요.
참고로 이준석 대표가 거론한 4호선 ‘경마공원역’의 무임승차 이용 순위는 이 자료에서 124위였습니다.
종로3가 일대야 원래 노인들의 거리로 알려지고 청량리와 제기동 일대는 전통시장 등 노인들이 선호하는 시설이 많아 그렇다고 하지만 영등포역 일대는 왜 노인들이 많이 오가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영등포구를 도시탐험에서 다루게 되면서 영등포역 일대를 살펴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종로3가 일대처럼 노인의 거리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영등포역 남쪽 출입구 근방의 영등포본동의 주택가에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서울의 오랜 주택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제기동역 일대를 일컫는 말 중에 ‘노인들의 해방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콜라텍이 많다는 이유에서요. 그러고 보니 영등포시장 일대에도 콜라텍이 많습니다. 영등포시장 간판에 소개되는 상가 건물들에 콜라텍이 있습니다.
영등포로에서 보면 콜라텍 간판만 세면 최소 6개 정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콜라텍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은 곳도 있는 거 같고요. 잘 살펴보면 노인들을 위한 댄스 교습소도 여럿 찾을 수 있고 노인들을 위한 공연장 같은 시설도 꽤 보입니다.
영등포시장 사거리 아래에 있는 지하상가를 가 보면 이런 분위기를 특히 더 느낄 수 있습니다. 옷 가게들이 들어섰는데 평상복이 아닌 화려한 술과 장식이 들어간 댄스복을 파는 점포들이 여럿입니다. 한 상인에 따르면 "댄스 즐기는 멋쟁이 어르신들이 입는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면 영등포역과 영등포시장 일대는 어르신들이 또래들과 어울리는 즐거운 동네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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