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모습도 에너지로 쓰는 현대무용
[노민정 칼럼니스트] "현대무용은 어려워요"
때때로 사람들은 내게 이야기한다. 들어는 봤는데 정확히 어떤 것을 현대무용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영화 <라이즈>에서 주인공 엘리즈는 “발레는 하늘을 향해 바라보고, 현대무용은 땅과 밀접하다”고 말한다. 발레는 별들을 향해 바라보며 날아다니듯 하고, 현대무용은 땅과 밀착하며 현실에 맞닿는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발레는 ‘완벽함’을 추구한다. 즉 ‘인간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동작’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표현할 때 아름다움이 극대화된다. 숨 한번 시원하게 내뱉을 수 없는 발레 동작은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팔의 움직임 기법인 뽀르 드 브라(port de bras)는 겨드랑이 밑을 살짝 띄운 상태에서 팔꿈치부터 손끝까지 살짝 위로 틀어준 상태에서 움직인다. 쉽게 이야기하면, 팔꿈치를 중심으로 위 아래를 반대 방향으로 뒤튼다. 듣기만 해도 온 팔이 저릿한 이 동작은 무용수가 더 가늘어 보이는 효과와 우아함을 더해준다.
또 파쿠뤼(pas couru)는 토슈즈를 신고 수직으로 서는 동작으로, 말 그대로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고 걷고 뛰어야 한다.
국립발레단에서 최장기 활동했던 베테랑 발레리나 김지영도 토슈즈가 ‘애증의 관계’라고 할 정도로 어렵고 고된 훈련이 필요하다. 고된 과정을 겪은 발레리나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관객들은 매료된다.
발레가 원하는 스타일이 분명하다. 작품의 캐릭터를 그대로 실현해 줄, 즉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가녀린 순종적인 여자’ 모습이다. 특히 <지젤>,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야>에서는 모두 왕자에 의해 비운을 맞이하며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여자들이다. 또 무용수들의 개성보다는 정해진 동작을 완벽히 실현해 줄 기량이 뛰어난 무용수들을 원한다.
반면 현대무용은 ‘자연스러움’이다. 영화 <라이즈>에 등장하는 실제 안무가 호페쉬 쉑터는 “때로는 불완전한 것들도 흥미롭고 인간적이라, 오히려 에너지로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무용수가 느끼는 모든 감정과 상황이 다 춤이자,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영화 <라이즈>에는 무용수들이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두 팔 벌려 만끽하는 장면이 있다. 바람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바람에 밀려 다른 무용수들과 만나면, 적극적으로 새로운 동작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즐긴다. 현대무용은 이렇게 우리가 느끼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표현한다.
발레와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닥을 이용하는 ‘플로우 무브’다. 엘리즈는 “발레에서 바닥은 두려움”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현대무용에서 바닥은 신체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의지할 수 있는 도구와 수단이다. 끌어당기는 힘을 이용해 물 흐르듯 움직이는 것. 실제로도 무용단이나 학교에서도 플로어 수업이 따로 있을 정도로 현대무용에서는 중요한 패러다임이다.
"약한 건 새로운 초능력이야. 완벽해질 순 없다" 호페쉬는 말한다.
춤이란 약점이나 의심이나 두려움, 그런 것도 모두 흥미로운 것이 될 수 있다.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현대무용은 나의 약한 모습마저도 에너지로 쓴다.
발레와 현대무용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표현 방법이 다를 뿐이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그 자체를 즐기기 바란다.
영화 속 엘리즈는 말한다. "저렇게 멋진데 장르가 무슨 상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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