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ESG 공시▲상속·증여세 개편 화두로
재계, 지배구조 밸류업과 무관…저평가 원인부터 찾아야
2024년 상반기 경제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먹구름 뒤 햇살을 확인했다 정도로 요약 가능하다.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예상을 웃돈 성장은 하반기 기대감을 키운다. 하지만 여전히 대내외적 변수 속에 하반기 경제 또한 기대만큼 걸림돌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올 하반기 재계와 산업계가 주목하는 다섯 가지 이슈를 짚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이 원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 정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광폭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상법 개정을 주도하는 동시에 재계 등 이해관계자들과 적극적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올 하반기 이복현의 지배구조 개편 시곗바늘이 빠르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은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 개정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상속·증여세제 개편 등 재계와 산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복현의 시간'의 핵심 화두다. 재계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과도한 규제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나씩 뜯어보자. 우선 밸류업 일환으로 추진하는 상법 개정은 기업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걸 뼈대로 하고 있다.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하도록 상법을 고쳐 주주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부작용이 예상된다. 배임 우려로 과감한 M&A(인수합병), 미래 먹거리를 위한 장기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재계 안팎에서 나온다. 규제를 풀어줘도 모자랄 판에 더욱 옥죈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아울러 회사와 이사 간 법적 위임 관계에 뿌리를 둔 현행 법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철 한국경제인연합회 연구총괄대표는 최근 열린 상법 개정 관련 세미나에서 "상법 개정으로 기업의 신속한 경영판단이 어려워지고 이사회의 정상적 의사결정에 대한 소송 등 사법리스크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이 부족한 상황에서 해외 헤지펀드나 행동주의 펀드 같은 경영권 공격 세력에게만 유리한 수단이 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기업 발전을 저해하고 경영 현장의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ESG 공시 의무화는 세계적 추세다. 하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기업이 많다. 한국경제인연합회(한경협)는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가 대기업은 물론 공급망 내 중소·중견기업까지 적용되는 만큼 시행 전 충분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경협이 지난 3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103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속가능성 공시제도 도입 시기에 대해 '2029년 이후'가 돼야 한다는 기업이 27.2%로 가장 많았다.
한경협은 "지속가능성 공시 도입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우리나라 상황과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가 활용되고 장기적으로 현장에 안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년 묵은 상속·증예세제 개편안도 하반기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최고세율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기존 상속하는 재산총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을 피상속인이 받는 금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오랜 기간 연구하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세부 대안은 이달 말 발표 예정인 세법개정안에 담긴다. 이후 국회의 결정을 기다린다. 하지만 야당은 '부자 감세'와 '세수 감소' 등을 우려하며 상속·증여세제 개편에 신중한 입장이여서 개편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재계는 상속세 개편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30일 ▲상속세 최고세율 50%→25% 인하 ▲최대주주 주식 할증제 폐지 ▲가업상속공제 제도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건의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은 승계 시 상속세 부담에 대비하기 위해 재투자보다는 기업자산 매각 혹은 배당 증가를 할 수 밖에 없어 국가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 "상속과세의 전반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상속세 및 증여세는 많은 국가에서 폐지·완화하는 추세이고 폐지하는 경우 자본이득세로 전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같은 견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속세 부담이 높은 수준이고 현재 제도 자체가 20년 이상 개편되지 않아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기본적 인식이 있다"며 "시급성과 필요성을 고려해 7월 말 세법개정안 마련 때 담으려 한다"고 했다.
반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세수 확충 방안 없는 정부의 상속세 개편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윤석열 정부는 상속세·종부세·금투세 등 3대 부자감세에 드라이브를 걸며 초부자 세금 깎아주기에 올인하고 있다"며 "2년 간 76조원 세수 펑크라는 '역대급 경제 참사'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누구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7월 세법 개정안 발표에 대응한 '재정 파탄 청문회'도 예고했다. 국회법상 입법청문회는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 돼 현재 의석수를 감안할 때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개청할 수 있다.
밸류업 '뜨거운 감자' 지배구조…이복현 "하반기 골든타임"
이 원장은 한국적인 기업 지배구조가 자본시장 선진화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하며 올해 하반기를 지배구조 개편의 '골든타임'이라고 시점까지 구체화했다. 그러면서 올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세제 개편 논의가 이뤄지면 상속세 완화 의견을 피력하겠다고도 했다.
재계의 시각은 다르다. 재계의 주장을 요약하면 '지배구조 개선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다. 그러면서 기업의 '자율성'이 강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시에 기업마다 상황이 다른 만큼 어떤 지배구조가 우수한 지배구조인지 획일적으로 평가할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정철 한경협 연구총괄대표는 "기업 지배구조는 각 기업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강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기업의 낮은 수익성과 성장성"이라며 "기업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가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주장은 증명된 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지배구조 개선 없이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만큼 기업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재계의 의견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도 있다.
경영권과 관련한 지배구조도 뜨거운 감자다. 재계에선 최근 몇 년 간 행동주의 펀드들의 경영권 공격이 증가하면서 주주환원 목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면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 등으로 경영권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배주주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경영하지 못하면 투자 감소와 생산성 저하로 연결되는 만큼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과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보장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차등의결권은 1주당 1의결권을 가진 일반적 보통주와 달리 대주주 등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한 권리를 말한다. 포이즌필은 대주주에게 대량의 신주를 싸게 인수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을 발행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때 행사할 수 있게 만든 증권이다. 국내에선 두 제도 모두 도입되지 않았다. 일정 요건을 갖춘 비상장 벤처기업만 신주인수권과 유사한 '복수 의결권'이 부여되고 있다.
하지만 이 원장이 방점을 찍은 상법 개정안에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 보호장치가 도입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 능력과 별개로 재벌 총수의 지배권을 보장하는 '재벌 특혜'로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이 원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기업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 축사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근본적 원인으로 빠른 경제 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기업 지배구조의 모순이 지목되고 있다"며 "모든 주주가 기업의 성과를 골고루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발표한 기업 지배구조 순위에서 한국은 12개국 중 8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원장은 하반기를 자본시장 선진화의 '골든타임'으로 지목하면서 상속세 완화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세미나 후 이 원장은 "기업의 주가 부양 노력이 상속세 등의 왜곡된 제도로 억눌렸다는 점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은 없다"며 "당국 내에서 적극 논의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주요한 내용을 담고 내년도 예산 개편안에 어느 정도 담아 실천 가능한 방안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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