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GBI 편입시 국채시장에 최대 82조 유입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 편의성 높아져
"환율 변동성 줄지만 원화 강세는 제한적"
[오피니언뉴스=박준호 기자] 오늘부터 달러-원 외환시장이 새벽 2시까지 운영된다. 기존 오후 3시 30분에서 10시간 30분 연장되는 것이다. 지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27년만의 개편이다. 경제 규모 성장에 맞춰 시장 개방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글로벌 금융 중심지인 영국 런던 금융시장의 마감시간을 포괄하면서 글로벌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달러를 거래하는 시간에 원화도 실시간 거래하도록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외 투자자들의 거래 편의성이 높아지고 환율 변동성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 접근성이 높아짐에 따라 오는 9월 WGBI(세계국채지수) 편입 가능성도 상승, 국내 자금 유입 효과도 예상된다.
1일 기획재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외환시장 구조개선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김성욱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은 지난해 2월 정책 발표 당시 "외환은 나라 안과 밖 자본이 왕래하는 길”이라며 “나라 밖과 연결되는 수십년 된 낡은 2차선 비포장 도로를 4차선의 매끄러운 포장도로로 확장하고 정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예컨대 JP모건 뉴욕지점, HSBC 런던 등에서 바로 국내 외환시장에 들어와 국내 은행과 동등한 자격으로 거래할 수 있게 해외에 개방했다"며 "외국계 금융기관의 참여를 유도하는 차원에서 외환거래 시간을 새벽 2시까지 오픈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간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대한민국의 위상과 걸맞지 않은 평가를 받아 왔다. 시장 접근성이 떨어져서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와 FTSE 러셀(글로벌금융정보제공사)이 한국을 신흥시장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시장접근성에 있다”며 “한국은 두 지수기관이 사용하는 양적 평가에서 선진시장 기준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지만 시장접근성으로 명칭되는 질적 평가에 있어서 선진시장 수준에 못 미친다”고 분석했다.
2022년 기준 한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조2000억달러로 세계 11위, 상장기업 수는 2318개로 세계 8위에 위치하고 있다. 채권시장 발행잔액은 2조2000억달러로 세계 11위이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 일본 다음으로 큰 시장을 형성 중이다.
정부는 이번 외환시장 개방으로 외국 투자자들의 국내 시장 접근성을 높여 세계 최대 채권지수인 WGBI 편입을 노리고 있다. WGBI 편입이 확정된다면 국채를 매입하는 외국인 수요가 급증하면서 달러 수급이 개선될 수 있다. 국채금리가 안정화하면서 재정 조달비용이 감소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기재부는 현재 WGBI 편입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WGBI 편입시 WGBI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종 약 2%로 전망된다. 골드만삭스는 1.7%, 블룸버그는 최대 2.5%로 내다 본다. 평균 2%로 가정한다면 WGBI 추종 자금(2조5000억달러)을 고려했을 때 국채시장 유입 자금 규모는 500~600억 달러(69조원~82조원)로 추정된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당국이 적극적으로 시장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결국 WGBI 편입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며 “평균적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시기가 18~24개월임을 고려하면 편입시 매월 약 28억~50억 달러(약 3조3000억원~6조원)의 자금유입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외환시장을 개방하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투자 편의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국내 외환시장이 닫혀 있는 시간에 해외 주식을 사고 팔면 임시 환율인 ‘가환율’로 환전, 이튿날 외환시장 개장 이후 실제 시장 환율로 정산을 받아야 했다.
가환율은 환율 변동을 고려해 통상 5%라는 높은 수치로 설정된다. 주식 매매 후 다음날 시장환율로 계산반영돼 차액이 계좌로 입금되는 만큼 손해를 보진 않는다. 다만 높은 환율로 환전되기 때문에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새벽 2시까지 실시간 시장 환율이 적용되면서 투자 가능 액수가 늘어날 전망이다.
권아민 연구원은 “해외증권 투자자는 임시가 아닌 실시간 시장환율로 자유롭게 환전이 가능해진다”며 “대체로 미국 고용, 물가 등 야간에 굵직한 경제지표들이 발표되는데 시장 상황을 즉각반영한 환율로 환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달러·원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소비자물가지수(CPI),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고용지수 등은 우리 시간으로 늦은 밤이나 새벽에 발표된다. 그동안은 오후 3시 30분에 외환시장이 마감되다 보니 다음 날 오전 9시 개장할 때까지 17시간 동안 일어나는 여러 이벤트들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급락·급등 출발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앞으로는 거래시간 연장으로 이를 실시간 반영한 환율이 적용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환율 변동성이 줄어드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권아민 연구원은 “중국은 지난 2016년부터 위안화 국제화, 역내외 환율 괴리축소를 목적으로 역내 거래시간을 연장해 왔다”며 “마감시간 연장자체가 단기 거래량 증가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나 길게 보면 역내외 환율 괴리 축소에는 유의미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중국은 역내 위안화 거래 마감 시간을 지난 2016년 1월 오후 4시 30분에서 오후 11시 30분으로, 2023년 1월에는 오전 3시로 연장한 바 있다.
외환시장 개방이 달러·원 환율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권아민 연구원은 “여러 제도 개선으로 인한 시장 접근성 제고, 자금 유입은 원화 가치에 긍정적일 수 있다”면서도 “여전히 환율은 글로벌 달러화, 위안화, 국제유가 등 보다 굵직한 재료와 연계돼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WGBI 편입도 원화 강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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