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78) 황학동 시장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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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78) 황학동 시장들의 역사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6.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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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황학동’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아마 주방가구 시장을 떠올리는 이도 풍물시장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텐데요. 이들 시장은 서울중앙시장이 확장된 영역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황학동에 여러 시장이 들어선 이유는 위치 덕분입니다. 신당동과 왕십리 사이에 자리한 황학동은 예로부터 도심과 외곽이 만나는 지점이었습니다. 한양도성의 광희문을 나서면 만나는 첫 동리이기도 했고 도성 외곽지역에서 광희문을 통해 한양으로 가려면 지나야 하는 마지막 동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황학동은 오래도록 신당리 혹은 신당동 영역에 속했었습니다. 그러다 1943년에 성동구 신당정 황학정회가 설치되며 ‘황학’이 지역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광복 후 1946년에는 ‘정’을 붙였던 일본식 지명을 황학동회로 변경했지만, 여전히 신당동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황학동은 1955년에야 하나의 동, 즉 행정동으로 분리되었습니다. 1975년에는 상왕십리 일부를 편입하고 지자체 또한 성동구에서 중구로 바뀌며 오늘에 이릅니다. 

도심과 외곽의 연결 지점 황학동

신당동 주변을 지나는 길은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관련 연구를 종합하면, 고려시대에 왕십리를 거쳐 뚝섬, 수철리(금호동), 두모포(옥수동)로 향하는 길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임금들이 광희문을 나서 한강 남쪽의 선릉이나 헌릉으로 행차했다고 합니다. 

이 길들은 오늘날 신당동과 왕십리 일대 도로의 근간이 되기도 했는데요. 포장된 도로 아래에는 이런 시간의 지층들이 쌓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황학동이 속한 신당동 일대에 길이 발달한 건 도심과 외곽의 연결 지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동안 왕십리 일대와 뚝섬 일대는 근교농업 중심지였습니다. 이 일대에서 재배한 농산물이 광희문이나 흥인지문을 통해 서울 도심으로 공급되었습니다.

농산물을 도심의 시장에서 팔려면 먼저 씻고 자르고 다듬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 장소가 신당동 일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공되기 전의 식자재를 저렴하게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도 하네요. 

특히 조선 후기에는 황학동에 식자재를 사고파는 난전이 생기는 등 상업 활동이 활발했다고 합니다. 황학동 일대가 청계천으로 향하는 지류들이 지나는 저지대라는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거지가 들어서지 않은 공간이 많아 그곳에 난전이 들어설 수 있었다는 겁니다. 

반면 신당동 일대의 구릉지와 왕십리 일대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서민들의 주거 공간이 대거 들어서게 됩니다. 덕분에 황학동의 난전은 서민들을 위한 전통시장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됩니다. 

서울중앙시장 중앙 통로. 서울시에 등록된 시장 개설 시기는 1962년이지만 오래전부터 있었던 황학동 일대 시장들의 영역을 아우르며 발전했다는 분석이 있다.

전통시장이 들어선 황학동

오늘날의 황학동에 공식적으로 시장이 들어선 건 1946년입니다. 당시 서울시에 등록된 이름은 ‘성동사설시장’입니다. 1949년에 309개의 점포가 있었는데 당시 서울의 사설시장 중 가장 많은 점포 숫자였다고 합니다. 

1950년에는 근처에 ‘성동중앙시장’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때 양곡시장도 함께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전쟁은 양곡시장의 성장을 불러왔습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1953년 성동중앙시장의 양곡시장이 서울시민이 소비하던 양곡의 70%를 공급했다고 합니다. 1958년에는 44개의 양곡 가게가 있었는데 서울 시내 시장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였다고 하네요.

서울중앙시장 부근 양곡 가게. 이 거리는 일제강점기에 폐쇄된 ‘싸전거리’가 있던 곳이다. 문을 닫은 양곡 가게에는 요즘 트렌드에 따른 업소들이 입주했다.

지금도 양곡시장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양곡시장이 자리 잡은 거리는 원래 일제강점기 때 쌀 배급 정책으로 폐쇄된 ‘싸전거리’였다고 합니다. 정주영 회장이 젊은 시절 쌀가게 점원으로 일했던 거리라는 팻말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데로 옮겨가거나 문을 닫은 양곡 가게가 많은데 그 자리에는 요즘 유행에 따른 가게들이 입점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힙당동’ 명소가 모인 ‘싸전거리’는 서울중앙시장과 연결됩니다.

서울중앙시장 측 자료를 보면 이 시장은 1962년에 개설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장이 생겼다기보다는 광복 후 황학동에 생긴 시장들이 점점 커지자 기존 시장 영역을 아우르면서 서울중앙시장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분석이 있습니다. 물론 이들 시장의 전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청계천 변 난전들도 있겠지만요.

신당역 앞 퇴계로에서 중앙시장에 들어서면 각종 식자재 점포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닭과 돼지 부산물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시장 통로 곳곳에서 닭발을 손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황학동 주방가구 시장. 서울중앙시장 북쪽의 마장로와 도로변 골목들에 형성되어 있다.

주방가구 시장과 풍물시장의 흔적

서울중앙시장 중앙 통로에서 북쪽으로 나서면 마장로가 나옵니다. 그 도로변과 주변 골목들에는 주방가구 시장이 있습니다. 황학동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요식업을 위한 모든 기자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는 포장마차를 만드는 업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장로 일대에 주방용품 가게들이 들어선 건 1970년대 말부터입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구 외식문화의 도입으로 요식업이 활발해진 영향이었습니다. 서울중앙시장이 식자재 공급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포장마차와 부자재를 제작하던 인근 지역이 주방용품 유통으로 발전하게 된 거였습니다.

지금은 중고 주방용품으로 소문난 곳이기도 합니다. 불황이라 폐업하는 식당이 많다고 하지만 기자재를 둘러보는 이들을 꽤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경기도에서 분식집 개업을 준비한다는 젊은 커플은 “사용감이 전혀 보이지 않는 중고도 많더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주방용품은 중고로, 식탁과 의자는 새 걸로 주문했다고 했습니다. 

황학동은 한때 풍물시장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좌판을 펼친 노점에는 말 그대로 온갖 물건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청계천 개발로 노점들은 동대문운동장으로, 또 신설동의 서울풍물시장으로 옮겨 다녀야 했고 일부는 청계천 건너 동묘에서 정착하기도 했습니다. 황학동의 옛날 모습을 간직한 곳이 바로 동묘 일대입니다. 

그리고 쫓겨나지 않은 황학동의 노점들이 남아 있는 곳도 있습니다. 예전처럼 좌판이 아니라 점포에 입주한 모습이지만요. 

마장로3길. 과거 황학동 풍물시장의 맥을 이어가는 곳이다. 노점 대신 점포에 입주했다. 다만 오른쪽 가게들은 나름 건물의 점포에 입주했는데 왼쪽 가게들은 성동공고 담벼락에 붙어 있는 구조다. 이른바 무허가 건축물이다.

마장로3길이 대표적입니다. 성동공고 동쪽 담장 옆에 있는 골목입니다. 그런데 골목 한쪽은 나름 건물에 입주한 점포들이지만 다른 한쪽은 성동공고 담벼락에 점포들이 붙어 있습니다. 사실상 무허가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이 골목에서 볼 수 있는 품목은 다양합니다. 시계, 오디오, TV, 카메라, LP, DVD 등 가지각색의 중고 물품을 취급합니다. 

제게 이 골목은 추억의 장소입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이른바 ‘빽판’을 구하러 왔었습니다. 복제판이 불법이라는 인식도 부족했고 저렴한 가격과 신기한 동네 분위기에 혹해서 온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지금은 중고 LP를 구하러 간혹 들르곤 합니다. 청계천 변 마장로9길에 오래된 중고 LP 가게 두 곳이 있습니다. 청계천 건너 동묘의 헌책방들과 함께 나들이 장소로 추천합니다. 어쩌면 추억이 담긴 보물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황학동의 중고 LP 가게. 이곳에서 영업한 지 30년이 넘었고 가게 입구에는 ‘서울 100년 가게’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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